밀러의 법칙
Miller's Law
개념
사람이 한 번에 머리에 붙잡을 수 있는 항목이 일곱 개 안팎이라는 한계로, 화면에 몇 개씩 묶어 보여 줄지 정할 때 근거가 됩니다.
등장 배경
메뉴를 몇 개까지 늘어놓아도 되는지, 가입을 몇 단계로 쪼개야 하는지에는 오래도록 답이 없었습니다. 만드는 쪽은 넣을 수 있는 만큼 넣었고 쓰는 쪽은 화면 앞에서 멈칫했습니다. 항목 스무 개짜리 메뉴에서 원하는 것을 못 찾는 일은 흔했지만, 그게 개수가 많아서인지 이름이 나빠서인지 가려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의는 취향 싸움이 됐습니다. "메뉴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하면 "그럼 몇 개가 적당한데요" 가 돌아왔고, 거기에 답할 근거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은 기준은 목소리 크기와 기능을 더 넣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1956년 심리학자 조지 밀러가 사람의 단기 기억을 재서 숫자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한 번에 붙잡고 있을 수 있는 항목이 일곱 개 안팎이더라는 것입니다. 디자인이 이 숫자를 계속 인용하는 이유는 정확한 상한을 알려 줘서가 아니라, 사람의 머리에 용량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잴 수 있는 형태로 보여 줬기 때문입니다. 취향으로 다투던 자리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느냐" 라는 다른 질문을 놓은 셈입니다.
작동 방식
지금 다루고 있는 정보를 담아 두는 자리는 좁아서, 새 항목이 들어오면 먼저 들어와 있던 항목이 밀려납니다. 이 좁은 자리를 단기 기억이라고 부릅니다. 오래 쌓아 두는 기억과 달리 몇십 초만 유지되고, 주의를 뺏기면 그대로 사라집니다. 전화번호를 듣고 받아 적기 전에 누가 말을 걸면 번호가 날아가는 경험이 그 자리의 크기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세는 단위는 글자나 숫자가 아니라 덩이입니다. 01012345678 은 열한 자리라서 그대로는 버겁지만, 010-1234-5678 로 끊으면 덩이가 셋이라 붙잡기 쉬워집니다. 자릿수는 그대로인데 부담만 줄었습니다. 덩이 안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한계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고, 덩이가 몇 개인지가 한계를 정합니다.
그래서 이 법칙을 쓰는 방향은 항목을 지우는 쪽이 아니라 묶는 쪽입니다. 메뉴 열두 개를 다섯 개로 줄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격이 비슷한 것끼리 묶어 머리 위 단계에서 셋이나 넷만 보이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놓인 것과 닮은 것을 한 덩이로 묶어 본다는 게슈탈트 원리가 이때 함께 쓰입니다. 여백과 구분선만 조절해도 같은 열두 개가 세 덩이로 읽힙니다.
숫자 일곱은 그대로 믿을 값은 아닙니다. 밀러 이후의 연구는 아무 도움 없이 붙잡을 수 있는 덩이를 네 개 안팎으로 봅니다.
쓰이는 곳
이 법칙이 실제로 걸리는 자리는 한 번에 나란히 보여 줄 항목의 개수를 정할 때입니다. 화면 사이를 오가게 해 주는 장치인 내비게이션의 상단 메뉴, 설정 화면의 항목, 요금제 카드, 가입 절차의 단계 수가 모두 그 자리입니다.
항목이 많다고 느껴질 때는 세 단계를 거칩니다.
- 동시에 보이는 것이 몇 덩이인지 셉니다. 전체 항목 수가 아니라 한 화면에서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덩이를 셉니다. 스무 개가 탭 세 개에 나뉘어 있으면 이 숫자는 세 덩이에 한 탭 안의 항목 수를 더한 값입니다.
- 묶을 기준을 찾습니다. 하는 일이 비슷한 것, 같은 대상을 다루는 것, 같은 시점에 쓰이는 것 순으로 봅니다. 기준이 안 보이면 개수가 아니라 이름과 분류가 문제라는 뜻이고, 그때는 내용을 나누고 이름 붙이는 뼈대인 정보 구조부터 다시 봅니다.
- 묶음에 이름을 답니다. 이름이 안 붙는 묶음은 사람 머리에서도 한 덩이로 뭉쳐지지 않습니다. "기타" 로만 묶이는 항목이 자꾸 생기면 2번으로 돌아갑니다.
필요한 때에만 정보를 단계적으로 드러내는 점진적 노출도 같은 한계를 다루는 방법입니다. 문서 공유 화면에서 링크 복사 하나만 먼저 보이고 권한 설정은 더 보기 뒤에 두면, 전체 기능 수는 그대로인데 한 번에 감당할 덩이만 줄어듭니다.
실무 용례
"상단 메뉴가 열한 개인데 성격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넷으로 줄여 보죠."
항목을 지우자는 게 아니라 위에 한 층을 만들어 덩이 수를 줄이자는 제안입니다.
"일곱 개를 넘기면 안 된다는 규칙은 아니고요, 한 번에 보이는 덩이가 몇 개인지를 세 보자는 겁니다."
숫자를 통과 기준으로 읽으려는 사람을 정정하는 말입니다.
"설정 항목이 스무 개인데 탭 셋으로 나누면 한 화면에 보이는 건 일곱 개 안쪽입니다."
전체 개수는 그대로 두고 동시에 보이는 양만 줄이는 방법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페이지덱에서 사이드바를 다시 짤 때 민서가 꺼낸 근거가 이것이었습니다. 문서·템플릿·공유·휴지통·알림·검색·즐겨찾기·최근 항목 여덟 개가 한 줄로 늘어서 있었고, 인터뷰에서 "찾긴 하는데 매번 훑어야 한다" 는 말이 반복됐습니다. 민서는 여덟 개를 지우자고 하지 않고 작업 공간·내 문서·도구 세 덩이로 묶은 시안을 가져왔습니다.
태오가 "항목 수가 똑같은데 나아지나요" 하고 물었고, 민서는 한 번에 훑어야 하는 것이 여덟에서 셋으로 줄어든다고 답했습니다. 규원은 자주 쓰는 검색이 도구 안으로 들어가 한 번 더 눌러야 하는 점을 짚었고, 그 항목만 묶음 밖에 두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법칙이 답을 정해 주지 않고 무엇을 세어야 하는지만 알려 준 셈입니다.
흔한 오해
가장 흔한 오해는 이 법칙을 일곱 개 상한 규칙으로 읽는 것입니다. 숫자가 하나뿐이라 규칙처럼 보이고, 회의에서 쓰기에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래 관찰은 단기 기억의 크기에 대한 것이지 화면에 몇 개를 놓아도 되는지에 대한 게 아닙니다. 항목이 화면에 계속 남아 있어 눈으로 다시 볼 수 있으면 열다섯 개짜리 목록도 문제가 되지 않고, 반대로 앞 단계를 외워야 다음을 고를 수 있는 구조면 다섯 개도 버겁습니다. 상한으로 못 박으면 스무 개짜리 목록을 일곱씩 잘라 세 페이지로 나누는 개악이 나옵니다.
개수만 줄이면 쉬워진다고 믿는 것도 같은 뿌리의 오해입니다. 눈에 보이는 항목이 줄면 화면이 깔끔해지니 나아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항목을 없앤 게 아니라 아래 단계로 내린 것이라면, 사람은 덜 헤매는 대신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상단 메뉴를 넷으로 줄이면서 나머지를 두 단계 아래로 내리면 예전에 한 번에 보이던 기능이 세 번 눌러야 나옵니다. 세는 대상은 한 화면의 항목 수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감당해야 하는 덩이의 총량입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 용어 | 무엇을 다루는가 | 밀러의 법칙과의 차이 |
|---|---|---|
| 힉의 법칙 | 선택지가 많을수록 고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경향 | 기억이 아니라 결정을 다룹니다. 밀러 쪽은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덩이 수가, 힉 쪽은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문제입니다. 요금제를 일곱 개 늘어놓으면 힉 쪽이 먼저 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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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