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원칙

Product Principles

개념

판단이 갈릴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다투지 않도록 어느 쪽을 고를지 미리 적어 둔 제품 팀의 약속입니다.

등장 배경

이 말이 없던 팀에서는 같은 논쟁이 분기마다 되풀이됩니다. 새로 들어온 사용자에게 기능을 다 보여 줄지 숨길지, 설정을 늘릴지 기본값 하나로 못 박을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는 자료를 더 모아도 답이 안 나옵니다. 양쪽 다 맞는 말이고 무엇을 포기할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정이 사람에 따라 뒤집혔습니다. 3월에는 단순하게 가자고 정해 옵션을 뺐는데 7월에는 고객사 요청이 세서 옵션을 넣습니다. 그 사이에 왜 그렇게 정했는지가 아무 데도 남지 않아, 9월에 들어온 사람이 "설정으로 열어 두면 되는데 왜 안 하나요" 하고 같은 논쟁을 처음부터 다시 엽니다. 회의는 세 번째로 두 시간을 쓰고, 이긴 쪽은 대개 그날 목소리가 컸던 쪽입니다.

제품 원칙은 이 논쟁을 한 번만 하고 결과를 적어 두는 방법입니다. 매번 처음부터 겨루는 대신, 이 팀은 이런 갈림길에서 이쪽을 택한다고 미리 정해 놓고 다음부터는 그 문장을 꺼냅니다.

작동 방식

제품 원칙은 둘 다 좋은 것 가운데 하나를 버리는 문장으로 씁니다. "속도보다 신뢰를 택한다" 처럼 무엇을 포기하는지가 문장 안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반대쪽을 버리지 않는 문장은 회의에서 아무것도 가르지 못합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는 원칙이 아닙니다. 회의실에서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문장이라 어느 안을 고를지 정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새 기능을 늘리는 것보다 이미 있는 기능을 다듬는 것을 먼저 한다" 는 원칙입니다. 이 문장에 동의하면 이번 분기에 신규 기능 두 건을 포기해야 하고, 그 손해가 눈에 보입니다.

쓸 만한 원칙인지 가려내는 질문은 셋입니다. 반대로 적어도 말이 되는가, 이번 주 결정 가운데 하나 이상에 실제로 걸리는가, 지키면 잃는 것이 있는가. 셋 중 하나라도 아니면 구호이지 원칙이 아닙니다.

만드는 순서는 다섯 단계입니다.

  1. 최근 여섯 달 동안 팀이 갈렸던 결정 열 건을 모읍니다.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회의록과 결정 기록에서 뽑습니다.
  2. 건마다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갈렸는지 두 낱말로 적습니다. 속도와 신뢰, 자유도와 단순함, 신규 고객과 기존 고객 같은 식입니다.
  3. 되풀이된 쌍을 고릅니다. 열 건 중 네 건이 같은 쌍에서 갈렸다면 그 쌍이 이 팀의 진짜 갈림길입니다.
  4. 쌍마다 한 문장으로 쓰고 실제 결정 두 건을 예시로 붙입니다. 예시가 없으면 반년 뒤에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합니다.
  5. 개수를 셋에서 다섯 사이로 줄입니다. 열두 개를 적어 두면 어떤 결정에도 들어맞는 문장이 하나쯤 나와서 결국 아무것도 가르지 못합니다.

원칙은 한번 적고 끝나지 않습니다. 원칙과 어긋나는 결정을 했다면 둘 중 하나를 합니다. 결정을 되돌리거나, 원칙이 더는 맞지 않는다고 보고 문장을 고칩니다. 어긋난 채로 두면 다음 회의에서 아무도 그 문장을 꺼내지 않습니다.

쓰이는 곳

원칙이 실제로 꺼내지는 자리는 넷입니다.

첫째는 요청을 거절할 때입니다. 거절에는 이유가 필요한데 담당자 개인의 판단으로 말하면 설득이 어렵습니다. 팀이 합의해 적어 둔 문장을 근거로 대면 이야기가 개인 취향에서 팀의 선택으로 옮겨 갑니다.

둘째는 우선순위 회의입니다. 후보 스무 건의 값어치를 저울에 올려 견줄 수 없을 때, 원칙이 몇 건을 먼저 떨어뜨려 줍니다. 저장 속도를 0.3초 줄이는 작업과 저장 실패를 만 번에 한 번에서 십만 번에 한 번으로 내리는 작업이 나란히 올라오면, 속도보다 신뢰를 택한다는 문장이 순서를 정합니다.

셋째는 디자인 리뷰입니다. 화면 두 안을 두고 취향으로 갈릴 때 원칙이 판정 기준이 됩니다.

넷째는 새로 온 사람을 앉힐 때입니다. 지난 2년의 결정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 결정들이 따른 규칙 넷을 대신 건넵니다.

원칙은 옆 용어들과 붙어서 움직입니다. 고객 머릿속에서 차지할 자리를 정한 제품 포지셔닝이 먼저 서야 무엇을 버려도 되는지가 보이고, 경쟁 제품이 따라 하기 어려운 강점인 차별화 요소가 정해지면 그 영역만 직접 만들고 나머지는 사 오거나 붙여 쓰는 빌드-바이-파트너 판단이 원칙대로 떨어집니다.

실무 용례

"이건 우리 원칙이랑 어긋나는데요. 설정으로 빼면 기본값 하나로 간다는 문장이 무너집니다."

취향이 아니라 팀이 합의한 문장을 근거로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원칙이 네 개인데 이번 결정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네요."

적어 둔 문장들이 실제 판단에 쓰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 요청은 받되 이번 분기는 아닙니다. 기존 기능 다듬기가 먼저라고 적어 뒀어요."

거절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고 그 순서에 근거가 있다는 답입니다.

페이지덱은 시리즈 A 직후에 원칙 넷을 적었습니다. 지현이 지난 반년의 결정 열두 건을 늘어놓고 갈렸던 지점을 두 낱말씩 적었더니 속도와 신뢰, 자유도와 단순함이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그 둘을 문장으로 만들고 실제 결정 예시를 하나씩 붙였습니다.

이후 민서가 화면 두 안을 올릴 때 "이 안은 설정을 하나 더 늘립니다" 라는 줄을 함께 답니다. 그 줄이 붙으면 회의는 어느 안이 예쁜지가 아니라 이번에는 원칙을 지킬지 깰지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흔한 오해

원칙을 회사의 가치 선언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벽에 붙는 문장이라는 점이 같으니 헷갈릴 만합니다. 그러나 가치 선언은 구성원이 어떤 태도로 일할지를 말하고, 제품 원칙은 제품을 두고 갈린 두 안 중 어느 쪽을 고를지를 말합니다. 정직과 존중은 제품 A와 B를 갈라 주지 않습니다. 이 둘을 섞으면 벽에 붙은 문장이 늘어나는 동안 회의에서 꺼낼 수 있는 문장은 하나도 늘지 않습니다.

원칙만 있으면 결정이 저절로 난다고 보는 오해도 흔합니다. 미리 정해 둔 답이라는 말이 그렇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원칙이 하는 일은 후보를 줄이는 데까지입니다. 남은 두 안이 모두 원칙에 맞으면 그때부터는 자료와 판단의 몫이고, 반대로 양쪽 원칙이 서로 부딪히는 결정도 나옵니다. 이 한계를 모르면 원칙을 들고 결론이 안 나는 회의가 길어지다가 팀이 그 문장 자체를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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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