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AG

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

도구

웹 표준을 만드는 국제 단체가 접근성 항목을 판정 가능한 문장으로 적고 달성 수준을 세 등급으로 나눠 둔 지침입니다.

등장 배경

접근성을 지키자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막히는 자리는 늘 그다음이었습니다. 어디까지 하면 지킨 것인지를 아무도 말하지 못했으니, 회의는 각자의 감을 겨루는 자리가 됐습니다.

회색 글자를 두고 오간 대화가 그 시절의 전형입니다. 디자이너가 연회색 본문을 올리면 개발자가 "이거 잘 안 보이는데요" 라고 하고, 디자이너는 "저는 잘 보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둘 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젊고 시력이 좋은 사람의 큰 모니터에서는 정말로 보이고, 나이가 들어 대비 감각이 떨어진 눈이나 햇빛이 드는 창가의 노트북에서는 정말로 안 보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판정할 도구가 없으니 결론은 목소리와 직급으로 났습니다.

문의도 같은 자리에서 끊겼습니다. 사용자가 "글자가 배경에 묻혀서 못 읽겠다" 고 보내면 담당자는 그 문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고쳐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얼마나 고치면 고친 것인지가 문장 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취향 문제로 분류되면 그 자리에서 목록 맨 아래로 내려갑니다.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권고가 아니라 참과 거짓이 갈리는 문장이었습니다. 웹 표준을 만드는 국제 단체 W3C 가 1999년에 첫 판을, 2008년에 2.0 판을 내면서 지침의 문장을 그렇게 바꿨습니다. "글자가 잘 보이게 하세요" 대신 "본문 크기 글자와 배경의 밝기 차이가 4.5 대 1 이상이어야 한다" 로 적은 것입니다. 앞 문장은 다툴 수 있고 뒤 문장은 계산기로 끝납니다. 2018년의 2.1 판에서 모바일과 저시력·인지 관련 항목이 더해졌고, 2.1 판 기준으로 이런 문장이 78개 있습니다.

문장이 이렇게 바뀌자 일하는 순서도 바뀌었습니다. 판정할 수 있는 항목은 목록이 되고, 목록이 되면 담당자와 마감이 붙습니다. 앞의 회색 글자 논쟁은 값을 재서 3.1 대 1 이라고 적는 것으로 끝나고, 그 줄은 누가 언제 고칠지가 적힌 항목으로 넘어갑니다. 취향 문제가 결함 목록의 한 줄이 된 것이 이 지침이 실무에 남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기준이 숫자가 되자 쓰임이 지침 바깥으로 번졌습니다. 접근성 법제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서비스를 쓸 수 있게 하라고 요구하는 규정인데, 규정이 판정 근거로 쓸 문장을 스스로 만들지 않고 이 지침의 항목 번호를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한국의 국가표준 지침도 이 구조를 따라갑니다. 공공기관 사업의 제안 요청서에 적힌 접근성 요구가 거의 예외 없이 이 지침의 등급 표기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분야 구성

WCAG 아래 용어는 두 갈래로 묶입니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나누는 원칙과, 어디까지 지켰는지를 가르는 등급입니다. 항목 하나는 둘을 동시에 답니다. 명도 대비 항목은 원칙으로는 첫 번째에 속하고 등급으로는 AA 입니다. 그래서 두 갈래는 같은 목록을 가로와 세로로 자른 것에 가깝습니다.

원칙은 네 자리이고, 지침 전체가 이 넷 아래 들어갑니다. 원칙 아래 주제별 지침이 열세 개 놓이고, 지침 아래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문장이 달립니다. 그 문장을 성공 기준이라고 부릅니다.

  1. 인식의 용이성 — 화면의 정보가 감각 하나에만 매여 있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미지에는 무엇이 담겼는지 글로 붙이고, 영상에는 자막을 달고, 성공과 실패를 색깔 점으로만 구분하지 않습니다. 여기 속한 항목 중 실무에서 가장 자주 걸리는 것이 명도 대비입니다. 글자와 배경의 밝기 차이를 계산한 값으로, 본문 크기 글자는 4.5 대 1 이상을 요구합니다. 흰 배경 위의 연회색 글자는 2.8 대 1 안팎이라 떨어지고, 같은 회색 계열에서 한두 단계만 진하게 내려도 통과합니다.
  2. 운용의 용이성 — 모든 기능을 실제로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마우스를 쓰지 않고 탭과 엔터와 화살표만으로 모든 자리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선택된 자리가 눈에 보여야 하고, 시간 제한이 걸린 화면은 시간을 늘릴 수단을 줘야 합니다. 1초에 세 번 넘게 번쩍이는 화면을 금지하는 항목도 이 원칙 아래 있습니다. 빠른 점멸이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어서입니다. 시안에서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선택 표시 테두리를 지우는 일이 잦은데, 지우는 순간 이 원칙의 항목 하나가 바로 미달이 됩니다.
  3. 이해의 용이성 — 읽히는 내용과 벌어지는 일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문서의 언어를 선언해 두라는 항목이 대표적입니다. 언어가 적혀 있지 않으면 화면을 소리로 읽어 주는 스크린 리더가 한국어 문장을 영어 발음으로 읽어 버립니다. 입력 오류를 알릴 때 어느 칸이 왜 잘못됐는지 글로 적으라는 항목도 여기 들어갑니다. 가입 화면에서 칸 테두리만 빨갛게 바뀌고 아무 문구도 뜨지 않으면 색을 못 보는 사용자는 무엇이 틀렸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비밀번호는 8자 이상이어야 합니다" 라는 한 줄이 그 자리를 메웁니다. 같은 기능을 화면마다 같은 자리에 두라는 항목, 낯선 낱말에 뜻을 붙여 두라는 항목도 이 원칙 아래 있습니다.
  4. 견고성 — 브라우저와 보조 기술이 달라져도 같게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앞의 셋이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고 들리는지를 다룬다면 이 원칙은 기계에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다룹니다. 요소마다 이름과 역할과 상태가 프로그램으로 읽히게 만들라는 것이 핵심 요구입니다. 모양만 버튼처럼 꾸민 상자는 사람 눈에는 버튼이지만 기계에는 아무 역할도 없는 상자로 전달되고, 그래서 이 원칙에서 걸립니다.

등급은 한 자리입니다. 준수 등급은 성공 기준마다 붙어 있는 A·AA·AAA 세 단계입니다. 등급은 항목의 중요도가 아니라 달성 난이도의 눈금에 가깝습니다. AA 를 만족했다는 말은 AA 항목만 지켰다는 뜻이 아니라 A 와 AA 를 모두 지켰다는 뜻입니다. 같은 주제가 등급을 달리해 두 번 나오기도 합니다. 명도 대비는 AA 에서 4.5 대 1, AAA 에서 7 대 1 을 요구합니다.

실무에서 목표로 삼는 값은 대개 가운데인 AA 입니다. 2.1 판에서 A 와 AA 를 합치면 항목이 50개이고, 이 정도가 일반적인 웹 서비스가 현실적으로 끝까지 맞출 수 있는 분량입니다. AAA 에는 수어 통역 제공이나 어려운 낱말 풀이 제공처럼 콘텐츠 종류에 따라 아예 적용이 어려운 항목이 섞여 있어서, 지침 문서 자체가 사이트 전체에 AAA 를 요구하지 말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법제와 공공 사업 요구가 거의 AA 에서 선을 긋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두 갈래를 같이 읽어야 판정이 성립합니다. 원칙만 보면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는 알지만 어디서 멈춰도 되는지를 모르고, 등급만 보면 목표 숫자는 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모릅니다. 점검표를 만들 때 원칙으로 담당을 나누고 등급으로 범위를 자르는 방식이 여기서 나옵니다. 인식과 이해는 주로 디자인과 문구가, 운용과 견고성은 주로 구현이 책임지고, 이번 출시에서 어디까지 볼지는 등급이 정합니다. 점검표 한 줄은 그래서 "본문 대비 4.5 대 1, 인식, AA, 민서" 같은 모양이 됩니다. 항목과 원칙과 등급과 담당이 한 줄에 같이 적히면 빠뜨린 자리가 눈에 보이고, 다음 출시에 무엇이 남았는지도 그 표에서 바로 읽힙니다.

실무 용례

"이 화면은 AA 로는 안 됩니다. 본문 회색이 3.1 대 1이라 4.5를 못 넘어요."

색을 바꾸자는 요청인데, 취향이 아니라 항목 미달이라는 근거를 달아 말한 것입니다.

"제안 요청서에 2.1 AA 준수라고 적혀 있어서 견적 전에 현재 상태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계약 조건에 걸린 항목이라 개선 작업의 분량을 먼저 재야 한다는 뜻입니다.

"AAA 까지 갈 필요는 없고 AA 만 맞춥시다."

목표 등급을 합의하는 말입니다. 어디서 멈출지를 미리 정해 두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페이지덱에서는 공공기관 도입 요청이 들어오면서 이 지침이 처음 일정표에 올랐습니다. 세일즈 수아가 받아 온 제안 요청서에 접근성 항목이 한 줄로 적혀 있었고, 그 한 줄이 화면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 민서가 색과 글자 크기를, 개발자 태오가 키보드 조작과 마크업을 맡아 항목 번호별로 현재 상태를 적었습니다.

점검 결과는 두 갈래로 갈렸습니다. 대체 텍스트나 언어 선언처럼 하루면 끝나는 항목이 절반이었고, 직접 만든 드롭다운과 모달을 키보드로 다룰 수 있게 고치는 일처럼 몇 주가 걸리는 항목이 나머지였습니다. 대표 규원이 이 목록을 보고 이번 분기에는 A 와 AA 중 계약에 걸린 항목만 먼저 맞추고 나머지는 다음 분기로 넘기기로 정했습니다. 항목에 번호와 등급이 붙어 있으니 무엇을 미뤘는지가 문서에 남았고, 다음 분기 계획을 세울 때 그 목록을 그대로 열었습니다.

흔한 오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지침으로 읽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대체 텍스트와 스크린 리더가 워낙 자주 언급되니 자연스러운 오해입니다. 실제로는 네 원칙 중 눈과 직접 관련된 항목은 일부이고, 키보드 조작·시간 제한·오류 안내·점멸 제한처럼 손을 쓰기 어려운 사용자, 인지 특성이 다른 사용자, 발작 위험이 있는 사용자를 향한 항목이 나란히 들어 있습니다. 대상을 좁게 잡으면 점검 범위도 같이 좁아집니다. 이미지 설명을 다 채워 놓고 정작 결제 화면을 키보드로 끝까지 통과할 수 없는 상태를 준수로 보고하게 됩니다.

자동 검사 도구를 통과하면 준수가 끝났다고 읽는 것도 잦습니다. 도구를 돌리면 오류 개수가 0으로 떨어지니 완료로 보이고, 보고서에 붙일 화면도 나옵니다. 그런데 도구가 판정할 수 있는 것은 기계가 혼자 읽어서 확인되는 항목뿐입니다. 대체 텍스트가 있는지는 도구가 알지만 그 문장이 이미지를 제대로 설명하는지는 모릅니다. "이미지" 라고만 적어 두어도 오류는 사라집니다. 링크 이름이 비어 있는지는 알지만 "여기를 클릭" 이라는 이름이 목록에서 쓸모없다는 것은 모릅니다. 그대로 두면 숫자상으로는 통과한 화면을 사용자가 여전히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나중에 법제 쪽 문의가 들어왔을 때 점검 기록이 방어가 되지 못합니다. 도구로 거른 뒤에 키보드만으로 주요 작업을 한 번 끝까지 해 보는 절차를 붙이는 이유입니다. 페이지덱에서는 마우스를 책상 아래로 내려 두고 문서를 새로 만들어 공유까지 마치는 데까지를 한 번 해 봅니다. 십 분이면 끝나는 점검인데, 자동 도구가 통과시킨 화면에서 막히는 자리가 매번 두세 군데씩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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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침의 항목 번호가 계약과 규정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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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