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 타임
Core Time
개념
출퇴근 시각을 각자 고르는 팀에서 이 시간만큼은 모두 붙어 있기로 못 박아 둔 공통 구간입니다.
등장 배경
출퇴근 시각을 각자 정하게 한 회사들이 곧바로 부딪힌 문제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는 아침 7시에 시작해 오후 4시에 마치고, 누구는 11시에 들어와 저녁 8시까지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겹치는 시간은 다섯 시간뿐이고, 여기에 점심과 각자의 회의가 끼면 실제로 말을 걸 수 있는 구간은 두어 시간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일이 이런 모양으로 흘러갑니다. 디자이너가 오후 3시에 "이 버튼을 눌렀을 때 둘 중 어느 쪽으로 넘어가는 게 맞나요" 하고 물어 놓고 4시에 퇴근합니다. 개발자는 5시에 그 메시지를 읽고 답을 씁니다. 디자이너는 다음 날 오전에 답을 읽고 되묻습니다. 30초면 끝났을 확인 하나가 이틀을 잡아먹습니다. 급한 사람은 결국 퇴근한 동료에게 전화를 겁니다. 유연하게 일하자고 만든 제도가 아무 때나 연락이 오는 제도로 바뀝니다.
코어 타임은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으려고 나온 절충안입니다. 하루 전체를 자유롭게 두는 대신 가운데 몇 시간만 잘라 모두가 있는 시간으로 정해 둡니다. 나머지 시간은 각자 쓰되, 서로에게 물어야 하는 일은 그 구간 안에서 끝냅니다.
작동 방식
하루 중 몇 시부터 몇 시까지를 공통 구간으로 삼을지 팀이 정하고, 그 시간에는 모두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있기로 약속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처럼 시각으로 못을 박고, 그 앞뒤로는 각자 언제 일을 시작하고 끝낼지 고릅니다.
정해야 할 것은 셋입니다.
- 구간의 길이와 위치입니다. 보통 하루 4~6시간을 잡습니다. 3시간으로 줄이면 회의 두 개만 잡혀도 꽉 차서 질문할 틈이 없고, 7시간으로 늘리면 앞뒤로 남는 한 시간씩을 두고 유연근무라고 부르기 어려워집니다. 위치는 대개 점심을 가운데 끼워 오전 늦게부터 오후 중반까지로 잡습니다.
- 그 안에서 지킬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붙어야 하는 일, 그러니까 회의와 즉답이 필요한 질문을 이 구간으로 몰아넣습니다. 동기 커뮤니케이션, 곧 화상 회의나 답이 곧바로 오가는 대화처럼 같은 시간에 함께해야 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구간 밖에서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코어 타임이 끝난 뒤에 온 질문은 다음 날 오전에 답해도 된다는 합의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게 빠지면 겹치는 시간만 늘어나고 각자의 시간은 그대로 침범당합니다.
셋 중 하나만 정하고 나머지를 비워 두면 제도가 굴러가지 않습니다. 시간대만 공지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은 팀에서는 코어 타임이 그냥 다 같이 앉아 있는 시간이 되고, 정작 회의는 여전히 아침 9시 반에 잡힙니다.
혼자 파고드는 일은 구간 밖으로 밀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모두가 붙어 있는 다섯 시간을 그런 작업으로 채우면 정작 물어볼 사람이 있을 때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쓰이는 곳
가장 흔한 자리는 원격 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입니다. 사무실에 모이지 않거나 출근 요일이 사람마다 다르면 누가 지금 일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코어 타임은 그 확인을 규칙으로 대신합니다. 오후 2시에 메시지를 보냈다면 상대가 읽고 있다고 가정해도 되는 겁니다.
근무 시간이 나라마다 어긋나는 팀에서는 남는 겹침 자체가 얼마 안 됩니다. 서울과 베를린은 7시간 차이라 서울의 오후 4시가 베를린의 오전 9시입니다. 이런 팀은 겹치는 두 시간을 코어 타임으로 잡고 나머지는 글로 주고받는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에 맡깁니다. 같은 시간에 붙어 있지 않아도 진행되도록 적어 두는 방식입니다.
회의 원칙을 정할 때도 기준으로 쓰입니다. 회의를 목적 없이 늘리지 않으려고 만든 규칙에 "정기 회의는 코어 타임 안에만 잡는다" 한 줄을 넣으면, 구간 밖에 회의를 잡으려는 사람이 먼저 한 번 멈추게 됩니다.
채용 공고에도 자주 적힙니다. 유연근무라고만 적으면 지원자는 그게 어디까지인지 모릅니다. 코어 타임이 몇 시부터인지 적혀 있으면 아침에 아이를 맡기고 오는 사람이 자기 하루가 돌아갈지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실무 용례
"그 논의는 코어 타임에 잡을게요. 지금 태오 님 퇴근하셨어요."
지금 물어봐야 의미가 없으니 모두가 있는 시간으로 미루자는 뜻입니다.
"우리 팀 코어 타임이 11시부터 4시라 그 회의는 어려울 것 같아요."
회의 시각이 구간 밖이라 참석자를 모으기 어렵다는 거절입니다.
"코어 타임에 집중 작업만 하시면 질문할 사람이 없어요."
혼자 파고드는 일은 구간 밖으로 옮기고 그 시간에는 서로 붙어 있자는 요청입니다.
페이지덱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를 코어 타임으로 둡니다. 태오는 7시 반에 일을 시작해 4시 반에 마치고, 민서는 10시에 들어와 7시까지 있습니다. 둘의 하루가 겹치는 구간은 사실상 코어 타임뿐이라, 화면 흐름을 맞추는 자리는 늘 오후 1시나 2시에 잡힙니다.
지현은 회의를 잡을 때 이 구간을 먼저 봅니다. 참석자 여섯 명 중 한 명이라도 코어 타임 밖에 있는 시각이면 다시 잡습니다. 반대로 오전 9시에 올라온 질문에 태오가 10시 반까지 답하지 않아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습니다. 아직 구간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흔한 오해
코어 타임을 근무 시간 전체로 읽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회사가 정한 유일한 시각이 그것뿐이니 그 다섯 시간만 채우면 된다고 듣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건 하루 중 반드시 겹쳐야 하는 구간일 뿐이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는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11시부터 4시가 코어 타임이고 하루 8시간이 기준이라면 앞뒤로 세 시간을 어디엔가 붙여야 합니다. 이걸 섞어 들은 신입이 매일 4시에 퇴근하다가 한 달 뒤에 근무 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을 듣습니다.
반대 방향의 오해도 있습니다. 코어 타임을 정했으니 회의는 그 안에 다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겹치는 시간이 그때뿐이니 자연스러운 결론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섯 시간짜리 구간에 회의를 네 개 넣으면 점심을 빼고 남는 한 시간이 그날의 전부가 됩니다. 이러면 코어 타임은 회의를 모아 두는 통이 되고, 사람들은 혼자 해야 할 일을 하려고 새벽이나 밤으로 도망갑니다. 구간의 절반 이상을 회의로 채우고 있다면 회의 수를 줄일 때이지 구간을 늘릴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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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