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가드

Laggard

개념

새로운 방식이 대세가 된 뒤에도 쓰던 것을 끝까지 바꾸지 않는 층으로, 수용 집단 다섯 가운데 맨 마지막에 놓입니다.

등장 배경

제품이 안 팔릴 때 원인을 찾는 방법은 오랫동안 하나뿐이었습니다. 아직 안 산 사람은 전부 아직 설득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봤고, 반응이 없는 고객에게도 같은 자료를 다시 보냈습니다.

영업 회의는 늘 같은 모양으로 흘러갔습니다. 반년째 답이 없는 고객사 이름이 나오면 누군가 "한 번 더 찾아가 보겠습니다" 하고 답하고, 다음 분기에도 그 이름이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안 사는 이유가 가격인지 기능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것인지 가릴 언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962년 에버렛 로저스는 같은 시장 안의 사람들을 제품을 받아들이는 시점에 따라 다섯 덩어리로 끊었습니다. 대세가 되고 한참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는 맨 뒤 덩어리에 붙은 이름이 래가드입니다. 이름이 생기고 달라진 것은 설득 방법이 아니라 명단입니다. 아직 설득하지 못한 사람과 애초에 대상이 아닌 사람을 나눠 셀 수 있게 됐습니다.

작동 방식

이 층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새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바꿨을 때의 손해는 확실하고 이득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로저스는 수용 시점을 분포로 그려 자리를 다섯으로 끊었습니다. 가장 먼저 쓰는 혁신 수용자가 2~3퍼센트, 이점을 먼저 알아보고 위험을 감수하는 얼리어답터가 13퍼센트쯤, 검증된 뒤 따라 들어오는 전기 다수와 대세가 된 뒤에야 움직이는 후기 다수가 각각 34퍼센트, 그리고 마지막 16퍼센트가 래가드입니다. 잘라 버려도 그만인 자투리가 아니라 여섯 곳 중 한 곳쯤 된다는 뜻입니다.

앞의 네 층과 갈리는 지점은 판단의 기준입니다. 전기 다수는 자기와 비슷한 회사가 이미 쓰는지를 보고, 후기 다수는 안 바꾸면 손해인지를 봅니다. 둘 다 바깥을 봅니다. 래가드는 안을 봅니다. 지금까지 이 방식으로 문제가 없었는지를 묻고, 없었다면 그것이 그대로 답이 됩니다.

비용을 세는 방식이 답을 정합니다. 쓰던 방식은 값을 이미 다 치렀습니다. 양식도 짜여 있고 사람도 익었습니다. 새것으로 옮기면 자료를 옮기는 품과 사람이 다시 익히는 시간, 그 사이에 일이 멈출 위험을 한꺼번에 새로 치릅니다. 월 3만 원짜리 도구를 쓰자고 열 명이 이틀씩 붙으면 첫해 비용은 구독료의 몇 배입니다. 이득 쪽에 확실한 숫자가 없으면 합계는 언제나 안 바꾸는 쪽입니다.

그래서 이 층을 움직이는 조건은 셋인데, 셋 다 제품 밖에 있습니다.

  1. 쓰던 것이 멈추는 경우입니다. 공급사가 지원을 끊으면 안 바꿀 수가 없습니다.
  2. 규정이 바꾸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거래처가 특정 형식으로만 서류를 받겠다고 하면 움직입니다.
  3. 결정하는 사람이 바뀌는 경우입니다. 20년을 그 방식으로 일한 담당자가 떠나면 그 방식을 지키던 이유도 함께 사라집니다.

셋 다 제품이 좋아져서도 파는 쪽이 잘해서도 아닙니다. 기능을 붙이거나 값을 깎아서는 만들 수 없는 조건입니다.

쓰이는 곳

이 말이 나오는 자리는 누구를 설득할지 정하는 회의가 아니라 누구를 빼고 셀지 정하는 회의입니다.

첫째는 시장 크기를 잡을 때입니다. 대상 회사가 10만 곳이라고 해서 10만 곳이 다 후보는 아닙니다. 래가드로 잡히는 몫을 덜어 내면 겨냥할 수 있는 시장은 8만 곳대로 내려갑니다. 이 차감을 빼먹으면 시장 규모가 부풀고, 그 숫자로 세운 매출 목표가 다음 해에 미달로 돌아옵니다.

둘째는 영업 명단을 정리할 때입니다. 판정은 느낌이 아니라 기록으로 합니다. 값을 20퍼센트 낮춘 제안에도 반응이 없었는지, 바꾸지 않는 이유로 든 것이 가격이었는지 이관 위험이었는지를 봅니다. 가격을 이유로 들었다면 아직 이 층이 아닙니다.

셋째는 사내에 새 도구를 들일 때입니다. 쉰 명짜리 조직에 협업 문서 도구를 들이면 끝까지 메일 첨부로 파일을 주고받는 사람이 여덟 명쯤 남습니다. 이들을 설득으로 끌어오려다 도입 자체가 무기한 밀리는 일이 흔합니다. 기존 방식을 언제 닫을지 날짜로 정해 두는 편이 빠릅니다.

래가드는 캐즘이 벌어지는 지점과는 거리가 멉니다. 골은 얼리어답터와 전기 다수 사이에 있고 이 층은 그 훨씬 뒤에 있습니다. 초기 제품이 안 팔리는 이유를 여기서 찾으면 정작 원인이 있는 앞쪽 구간을 놓칩니다.

실무 용례

"이 세 곳은 래가드로 보고 이번 분기 목표에서 뺐습니다."

여섯 달 넘게 진척이 없어 설득 대신 다른 고객에 시간을 쓰겠다는 뜻입니다.

"래가드까지 넣고 계산한 시장 규모라 실제 후보보다 큽니다."

자료에 적힌 숫자를 그대로 목표로 옮기지 말자는 제동입니다.

"우리 회사 안에도 래가드가 있어요. 아직 메일로 파일 주고받으시더라고요."

더 설득할 일이 아니라 기존 방식을 닫는 일정으로 풀자는 신호입니다.

페이지덱이 다음 해 목표를 잡던 자리에서 이 말이 오갔습니다. 규원이 국내 대상 회사 수를 그대로 목표 시장으로 놓자고 했고, 수아가 지난 1년치 영업 기록을 꺼냈습니다. 값을 20퍼센트 낮춘 제안까지 보냈는데 회신조차 없던 회사가 명단의 6분의 1이었고, 그중 통화가 된 몇 곳은 이유를 똑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방식으로 20년을 해 왔고 바꿀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아는 그 6분의 1을 지우는 대신 다른 칸으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거래처가 전자 서식을 요구하거나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때 다시 꺼내는 칸입니다.

흔한 오해

가장 흔한 것은 래가드를 뒤떨어진 사람으로 읽는 오해입니다. 이름 자체가 뒤처진 쪽을 가리키니 그렇게 읽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제품에서 무엇을 걸고 있는지로 정해집니다. 새 개발 도구를 남보다 먼저 깔아 보는 사람도 회계 시스템을 바꾸는 자리에서는 맨 뒤에 섭니다. 틀리면 안 되는 숫자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오해를 그대로 두면 안 사는 이유를 묻지 않게 됩니다. 이관 위험인지 규정인지 가리지 않은 채 상대를 한 단어로 정리해 버리고, 그 조건이 풀린 시점이 와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이 층은 영영 사지 않는다고 읽는 오해입니다. 앞의 조건 셋을 보면 이들도 결국 바꿉니다. 다만 바꾸는 시점을 정하는 쪽이 파는 사람이 아닐 뿐입니다. 둘을 같은 말로 여기면 명단에서 통째로 지워 버리고, 규정이 바뀌어 한꺼번에 움직이는 시기가 와도 연락할 창구가 없습니다. 목표에서 빼는 것과 명단에서 지우는 것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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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