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
Chasm
단계
새것을 먼저 쓰는 소수 사용자와 검증된 것만 사는 주류 시장 사이에서 수요가 끊겨 성장이 멈추는 구간입니다.
등장 배경
잘 나가던 제품이 어느 날 멈추는 일은 이 말이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뿐입니다. 초기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입소문도 돌았는데 신규 가입이 뚝 끊기면, 팀은 원인을 대개 둘 중 하나로 짚었습니다. 마케팅을 덜 했거나, 제품이 아직 부족하거나.
그래서 하던 일을 더 세게 했습니다. 광고비를 두 배로 늘리고 기능을 열 개 더 붙였습니다. 그런데도 숫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광고를 두 배로 틀면 들어와 보는 사람은 두 배가 되는데 그중 남는 비율이 절반 아래로 떨어져, 돈만 더 쓰고 결과는 제자리인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앞서 통했던 방법을 그대로 키웠는데 결과만 안 나오니 회의는 매번 같은 자리에서 막혔습니다. "작년에는 이걸로 됐잖아요" 라는 말과 "그때랑 지금은 다르죠" 라는 말이 맞부딪히는데, 어느 쪽도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는 대지 못했습니다.
1991년에 제프리 무어가 이 멈춤을 실력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바뀌는 지점으로 정리했습니다. 초반에 제품을 산 사람과 그다음에 사야 할 사람이 아예 다른 종류의 구매자라는 것입니다. 앞쪽은 남보다 먼저 쓰는 것 자체를 이득으로 여기므로 미완성이어도 감수합니다. 뒤쪽은 실패를 피하는 쪽이 먼저라서 남이 이미 써 본 증거를 찾습니다. 그래서 한쪽을 움직인 말이 다른 쪽에는 불안 요소로 들립니다. "아직 아무도 안 쓰는 방식입니다" 는 앞쪽에 매력이지만 뒤쪽에는 탈락 사유입니다. 같은 제품 설명서를 들고 같은 말을 했는데 한쪽에서는 계약이 되고 한쪽에서는 연락이 끊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섯 층으로 나눈 틀 자체는 새 기술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과정을 연구한 쪽에서 왔고, 무어가 거기에 층과 층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얹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 난 틈이 캐즘입니다. 원래는 지질학에서 땅이 갈라져 생긴 깊은 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골에 빗대는 이유는 건너편이 빤히 보이는데도 이어지는 길이 없어서입니다. 앞 구간에서 모은 후기와 추천은 다음 구간에서 근거로 쳐주지 않기 때문에, 성장은 완만하게 느려지는 대신 어느 분기에 갑자기 끊깁니다. 제품 수명주기가 도입에서 성장으로 넘어가는 자리에 이 골이 놓여 있습니다.
분야 구성
캐즘 아래에는 용어 여섯 개가 두 갈래로 붙습니다. 하나는 시장을 이루는 사람들을 새것을 받아들이는 순서로 끊어 본 수용 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골을 실제로 건너는 방법을 다루는 전략입니다.
수용 집단은 같은 시장 안의 사람들을 제품을 받아들이는 시점에 따라 다섯 덩어리로 나눈 갈래입니다. 한 사람이 늘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새 개발 도구 앞에서는 맨 앞에 서는 사람이 회계 시스템을 바꾸는 자리에서는 맨 뒤에 섭니다. 자리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제품에서 무엇을 걸고 있는지로 정해집니다.
- 혁신 수용자는 새롭다는 이유 하나로 가장 먼저 쓰는 층입니다. 시장의 2~3퍼센트 정도이고, 고장이 나도 재미있어합니다. 매출로는 의미가 없지만 제품이 아예 동작하는지를 처음 알려 주는 쪽입니다.
- 얼리어답터는 남보다 먼저 쓰는 데서 실제 이득을 보려는 층입니다. 기능이 절반만 되어 있어도 자기 문제가 풀리면 삽니다. 초기 매출과 후기가 거의 이 층에서 나옵니다.
- 전기 다수는 검증된 뒤에 따라 들어오는 실용적인 다수입니다. 시장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자기와 비슷한 회사가 이미 쓰고 있다는 증거를 요구합니다. 매출이 실제로 커지는 구간이 여기부터라서, 사업으로서의 성패는 이 층에 닿느냐로 갈립니다. 캐즘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층입니다.
- 후기 다수는 대세가 된 뒤에야 움직이는 층입니다. 안 바꾸면 손해라는 상황이 와야 결정하고, 값이 싸고 손이 덜 가는 쪽을 고릅니다.
- 래가드는 끝까지 바꾸지 않으려는 층입니다. 설득 대상으로 잡으면 비용만 나가므로 보통은 계산에서 뺍니다.
전기 다수가 요구하는 것은 기능 목록이 아니라 완결성입니다. 제품 자체가 좋은지를 넘어, 옮겨 오는 과정이 안전한지,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볼 곳이 있는지, 회사 규정에 걸리지 않는지까지 한 묶음으로 갖춰져 있어야 결재가 올라갑니다. 얼리어답터는 그 빈자리를 자기가 메우면서 씁니다. 이관 스크립트가 없으면 직접 짜고, 문서가 없으면 개발자에게 물어봅니다. 전기 다수는 그 자리를 메울 생각이 없고 메울 이유도 없습니다. 이미 쓰는 도구로 일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이 나는 자리는 2번과 3번 사이입니다. 1번에서 2번으로 넘어갈 때는 둘 다 새것에서 이득을 찾는 사람들이라 말이 그대로 통합니다. 2번에서 3번으로 갈 때는 결정의 기준 자체가 뒤집힙니다. 얼리어답터는 남들과 달라지려고 사고 전기 다수는 남들과 같아지려고 삽니다. 앞 구간에서 가장 잘 먹힌 "아직 아무도 안 쓰는 방식" 이라는 문장이 뒤 구간에서는 안 사야 할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같은 제품, 같은 메시지, 같은 영업 방식으로 밀면 넘어온 사람의 수가 갑자기 0에 가까워집니다.
무어는 다섯 층 사이마다 크고 작은 틈이 있다고 봤습니다. 혁신 수용자와 얼리어답터 사이에는 이득을 숫자로 보여 줄 수 있느냐는 틈이 있고, 전기 다수와 후기 다수 사이에는 손이 얼마나 가느냐는 틈이 있습니다. 나머지 틈은 하는 말을 바꾸면 건너지는데, 2번과 3번 사이만은 파는 방식과 제품의 범위를 함께 바꿔야 해서 따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전략은 그 골을 어떻게 건널지를 다루는 갈래입니다. 여기에는 볼링 앨리 하나가 붙습니다. 시장 전체를 한 번에 치려 하지 않고 아주 좁은 틈새 하나를 먼저 완전히 장악한 다음, 그 성공을 근거 삼아 옆의 인접 시장으로 하나씩 넘어가는 방식입니다. 볼링에서 맨 앞 핀을 정확히 맞히면 뒤의 핀들이 연달아 쓰러지는 모습에서 온 이름입니다. 전기 다수가 원하는 것이 결국 자기와 같은 처지의 회사가 먼저 성공한 사례이므로, 좁은 영역 하나를 통째로 채워 그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건너는 방법이 됩니다. 협업 문서 도구로 치면 처음부터 모든 회사를 상대하는 대신 임상 시험을 하는 바이오 회사처럼 기록 이력이 남아야 하는 한 업종만 잡고, 그 업종이 요구하는 이력 추적과 승인 절차를 끝까지 붙여 그 안에서 1등이 되는 식입니다. 표적을 좁히면 당장 닿는 시장이 줄어 손해처럼 보이지만, 좁혀야만 완결성을 한 분기 안에 채울 수 있고, 한 영역에서 채운 완결성이 다음 영역을 여는 사례가 됩니다. 전체를 상대로는 어느 한 군데도 끝까지 갖추지 못한 채로 분기가 끝납니다.
실무 용례
"지금 숫자는 얼리어답터가 만들어 준 거예요. 캐즘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지금의 성장세를 주류 시장에 들어갔다는 증거로 읽지 말자는 말입니다. 초기 층은 어차피 먼저 사 주는 사람들이라 그 수요가 다음 층의 수요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캐즘 넘으려면 레퍼런스 고객부터 나와야죠. 사례가 없으면 결재가 안 올라가요."
전기 다수는 남이 먼저 써 본 증거를 보고 결정하니 공개할 수 있는 도입 사례를 먼저 만들자는 요구입니다.
"이거 캐즘이 아니라 그냥 제품이 안 좋은 건 아닐까요?"
성장이 멈춘 원인을 시장 구간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 말입니다.
페이지덱에서는 시리즈 A 직후 분기에 이 말이 처음 회의에 올라왔습니다. 신규 팀 가입이 매달 30퍼센트씩 늘다가 두 분기 연속 5퍼센트에 머물렀고, 현우가 광고 예산을 두 배로 올려 봤지만 가입당 비용만 올라갔습니다. 수아는 상담 기록을 다시 훑고 나서 최근 상담에서 반복되는 질문이 예전과 다르다고 짚었습니다. 예전에는 무엇이 되느냐를 물었는데 이제는 비슷한 규모의 회사가 어디에서 쓰고 있느냐, 보안 점검 자료가 있느냐, 쓰던 문서를 옮기면 서식이 깨지지 않느냐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지현은 여기서 상대가 바뀌었다고 정리했습니다. 그동안 페이지덱을 산 쪽은 새 도구를 먼저 써 보고 싶어 하던 스타트업 팀이었고, 지금 문을 두드려야 하는 쪽은 쓰던 도구를 바꿔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지 않는 회사들이었습니다. 규원은 기능을 더 붙이는 대신 한 분기를 도입 사례와 이관 도구에 쓰기로 정했습니다. 백로그에 있던 기능 여덟 건이 뒤로 밀렸고, 대신 같은 업종 고객 세 곳의 사례를 공개하는 일이 앞으로 당겨졌습니다. 회의실에서 그 맞바꿈을 반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밀린 여덟 건이 모두 돈을 내는 고객이 요청한 기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현이 되풀이해 짚은 것은 그 여덟 건의 요청이 전부 골의 이쪽 편에서 왔다는 점이었습니다.
흔한 오해
캐즘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지나가는 구간으로 읽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도입과 성장 사이에 놓인 단계라는 설명을 들으면 순서대로 오는 통과 지점처럼 보이니 그렇게 읽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건너지 못한 채로 끝나는 제품이 훨씬 많습니다. 골은 지나가는 구간이 아니라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따로 놓아야 하는 자리이고, 그 다리는 사례와 완결성과 좁힌 표적이지 시간이 아닙니다. 저절로 지나갈 것으로 보고 기다리면 팀은 초기 사용자 몇백 곳에서 나오는 매출로 버티면서 기능만 계속 붙이다가, 자금이 떨어지는 시점에 시장이 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시장은 그동안에도 있었습니다. 없던 것은 그 시장의 사람들이 움직일 이유였습니다.
반대쪽 오해도 있습니다. 성장이 멈추면 무조건 캐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이름이 붙으면 원인을 찾은 기분이 들고, 우리 탓이 아니라 구간 탓이라는 설명은 듣기에도 편합니다. 하지만 성장이 멈추는 이유는 여럿입니다. 값이 시장에 안 맞았을 수도 있고, 광고를 보고 들어온 사람이 첫 화면에서 나가 버리는 문제일 수도 있고, 애초에 얼리어답터조차 계속 쓰지 않고 떠나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캐즘이라면 초기 사용자는 잘 쓰고 있는데 새로 오는 사람의 성격만 바뀌어 있어야 합니다. 먼저 들어온 고객의 재사용률이 여전히 높은지, 최근 상담에서 나오는 질문이 기능에서 증거로 옮겨 갔는지, 거절 사유가 못 쓰겠다가 아니라 아직 이르다로 바뀌었는지를 보면 구분이 됩니다. 셋 다 아니면 이름을 붙일 자리가 아니라 제품이나 값을 손볼 자리입니다. 이 확인을 건너뛰면 치르는 값이 분명합니다. 일주일이면 고쳤을 이유로 사람들이 떠나는 제품을 놓고 한 분기 내내 사례를 만들다가, 분기가 끝나면 그대로인 그래프와 늘어난 마케팅 청구서만 남습니다. 이 구분을 건너뛰고 이름부터 붙이면 팀은 멀쩡히 고칠 수 있었던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사례 만들기에 한 분기를 씁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 용어 | 무엇을 가리키는가 | 캐즘과의 차이 |
|---|---|---|
| 제품 시장 적합성 | 만든 제품이 어떤 시장의 수요와 맞물린 상태 | 맞물린 시장이 어디까지인지를 따집니다. 얼리어답터 시장에서 적합성을 확인해도 주류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하고, 그 사이의 구간이 캐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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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