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창업
Intrapreneurship
개념
회사 안에 작은 팀을 두고 예산과 결정권을 떼어 줘 창업하듯 새 사업을 만들게 하는 방식입니다.
등장 배경
큰 회사 안에서 새 사업이 죽는 자리는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사업을 잘 굴러가게 만든 장치들이 새 사업에는 그대로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출마다 결재를 받게 하는 절차는 낭비를 막는 좋은 장치지만, 무엇이 필요한지 아직 모르는 팀에게는 매번 2주를 기다리게 하는 벽입니다.
페이지덱에서 업무 자동화 쪽을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벽이 한꺼번에 드러났습니다. 지현과 태오가 붙었는데 세 가지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외부 도구를 하나 붙여 보려 해도 월 1회 열리는 경영 회의의 승인을 기다려야 했고, 첫 분기부터 매출 목표가 붙어 있어 아직 살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값부터 정해야 했으며, 본 제품에 장애가 나면 태오가 먼저 불려 갔습니다. 6개월 동안 나온 것은 발표 자료 한 벌이었습니다. 이듬해 그 아이디어와 비슷한 제품이 다른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사내 창업은 이 세 가지를 걷어 낸 형태입니다. 회사가 가진 것, 그러니까 이미 확보한 고객과 이름값과 현금은 그대로 쓰되, 일하는 방식만 창업팀에 가깝게 떼어 놓습니다. 새 사업을 시작하는 일과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을 나눈 것입니다.
작동 방식
작은 팀에 쓸 돈과 정할 권한을 미리 떼어 주고, 본사의 승인 절차 일부를 면제하고, 매출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평가할 기간을 정해 두는 순서로 돌아갑니다.
- 팀과 기간. 서너 명에서 예닐곱 명 사이의 전담 인원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묶습니다. 전담이라는 말을 문서가 아니라 일정으로 지켜야 합니다. 이름은 새 팀에 올라 있는데 주 나흘을 본 제품 장애 대응에 쓰고 있으면 그 팀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 예산. 1년치 금액을 미리 정해 통째로 넘기고 그 안에서는 건건이 결재하지 않습니다. 2억 원을 떼어 줬다면 그 돈을 어디에 쓸지는 팀이 정합니다. 금액의 크기보다 미리 확정해 뒀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 결정권. 무엇을 만들지, 얼마에 팔지, 누구에게 먼저 팔지를 팀이 정합니다. 회사 이름을 쓰는 데서 오는 조건, 그러니까 법무와 보안 기준은 그대로 지킵니다. 이 경계를 처음에 적어 두지 않으면 나중에 한 건씩 협상하게 되고, 협상이 늘면 속도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 평가 기준. 분기마다 묻는 것은 얼마를 벌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확인했는지입니다. 사업을 현재·확장·탐색으로 나눠 관리하는 틀인 3 호라이즌에서 셋째 칸에 적용하는 규칙과 같습니다.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인 MVP를 몇 명에게 보여 줬고 그중 몇이 돈을 내겠다고 했는지가 이 자리의 숫자입니다.
- 끝내는 조건. 시작할 때 접는 기준을 같이 적습니다. 1년 안에 유료 고객 20곳을 못 만들면 정리한다는 식입니다. 함께 적어 두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정리됐을 때 구성원이 원래 자리나 그에 준하는 자리로 돌아간다는 보장입니다. 이 줄이 없으면 회사에서 가장 아쉬운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습니다.
쓰이는 곳
본 사업의 성장이 완만해지기 시작했는데 현금은 아직 있는 회사에서 이 말이 가장 자주 나옵니다. 돈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고, 성장이 가파를 때는 굳이 꺼낼 이유가 없습니다.
첫째 자리는 자원 배분 회의입니다. 인력과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 정하는 자리이고, 여기서 탐색 몫을 얼마로 잡을지와 그 몫을 어떤 형태로 운영할지가 같이 정해집니다. 탐색 몫을 떼어 두고도 기존 조직 안에서 운영하면 앞의 세 가지 벽이 그대로 돌아옵니다.
둘째는 실패 가능성이 큰 시도를 다루는 자리입니다. 성공하면 판을 바꾸지만 대개 실패하는 시도를 문샷이라 부르는데, 이런 과제는 기존 조직의 분기 목표 안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목표 달성률로 평가받는 팀에 확률 낮은 과제를 얹으면 그 과제가 먼저 밀립니다.
셋째는 사람 쪽입니다. 밖에 나가 창업할 만한 사람이 회사 안에 머물 이유를 만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성과의 일부를 지분이나 별도 보상으로 돌려주는 조건을 붙이는 회사가 있는데, 이 조건이 없으면 위험은 회사가 지고 얻는 것도 회사가 가져가는 구조라 굳이 안에서 할 이유가 옅어집니다.
실무 용례
"이건 사내 창업 형태로 갑시다. 지금 승인 구조로는 6개월 안에 아무것도 못 냅니다."
절차를 면제받지 않으면 결과가 안 나온다는 판단을 밝히는 말입니다.
"사내 창업이라면서 예산 쓸 때마다 결재 올리면 그냥 신사업 팀이에요."
이름만 바뀌고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라는 지적입니다.
"1년 뒤에 접으면 원래 팀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지원할지 정하기 전에 실패했을 때의 자리를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페이지덱은 발표 자료로 끝난 뒤에 방식을 바꿨습니다. 규원이 네 명을 1년 전담으로 빼고 예산을 통째로 넘긴 다음, 분기 보고에서 매출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번 분기에 몇 팀과 이야기했고 그중 몇이 먼저 써 보겠다고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두 번째 분기 보고에서 이 팀은 처음 잡았던 방향을 버렸습니다. 자동화를 통째로 만드는 대신, 이미 페이지덱에 쌓인 문서에서 반복 작업을 찾아 주는 좁은 기능으로 범위를 줄였습니다. 매출 목표가 붙어 있었다면 방향을 바꾸는 순간 목표 미달로 잡혔을 결정입니다.
흔한 오해
이름만 붙이면 된다고 보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별도 팀을 만들고 사내 창업이라고 부르면 형태는 갖춰지니 그렇게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산과 결정권과 평가 기준 셋 중 하나라도 본사 규칙을 그대로 따르면 나머지 둘이 같이 멈춥니다. 매출 목표가 남아 있는 팀은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붙들고 있을 수 없어 첫 분기에 팔릴 만한 것으로 방향을 틀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기존 제품의 작은 확장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밖에서 창업하는 것보다 쉽다고 보는 것도 오해입니다. 돈과 고객이 이미 있으니 유리한 조건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밖에는 없는 어려움이 따로 있습니다. 같은 회사 안의 다른 팀과 사람과 예산을 놓고 겨뤄야 하고, 새 제품이 기존 제품의 매출을 깎아먹을 것 같으면 안에서 반대가 나옵니다. 시작할 때 무엇을 면제받는지 문서로 남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말로만 약속된 자율은 본 사업이 어려워지는 첫 분기에 가장 먼저 회수됩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 용어 | 무엇을 가리키는가 | 사내 창업과의 차이 |
|---|---|---|
| 신사업 | 만들려는 사업의 종류 | 무엇을 만드느냐를 가리킵니다. 사내 창업은 어떻게 일하게 하느냐를 가리키는 말이라 층이 다릅니다. 같은 신사업을 사내 창업 방식으로 할 수도, 기존 조직 안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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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