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Negotiation

단계

제안서를 보낸 뒤 가격과 계약 조건을 서로 맞춰 가는 구간으로, 서명 전에 남은 이견을 여기서 정리합니다.

등장 배경

거래 단계를 나눌 때 제안서와 서명 사이를 한 칸으로 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칸의 이름은 대개 검토 중이었습니다. 문서를 보냈고 아직 답이 안 왔다는 뜻인데, 그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담은 사람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행 상황을 묻는 자리가 매번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수아가 "잘 되고 있습니다" 라고 답하고 규원이 "그래서 이번 달에 들어오나요" 하고 다시 묻습니다. 실제로는 금액은 진작 합의됐고 고객사 법무가 해지 조항을 물고 있었는데, 그 사정이 한 칸 안에 뭉쳐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안서를 보낸 다음부터 서명 전까지를 따로 떼어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칸에 머무는 건은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 중이 아니라 사기로 하고 조건을 맞추는 중입니다. 앞 단계와 성격이 다르니 물어볼 것도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무엇이 막혔는지를 묻고, 여기서는 어느 항목이 남았는지를 묻습니다. 남은 항목을 셀 수 있게 되면서 이 구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간의 특징

이 구간의 가장 큰 특징은 앉아 있는 사람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만나 온 실무 담당자 옆에 구매 부서와 법무 검토자가 붙고, 기업 고객이면 보안 담당자도 들어옵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제품을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들의 일은 회사가 질 위험을 줄이는 것이라, 앞의 자리에서 잘 통하던 설명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오가는 항목도 가격 하나가 아닙니다. 대개 다섯 가지가 함께 움직입니다.

  1. 금액 — 좌석당 단가와 할인율입니다. 가장 먼저 꺼내지만 가장 먼저 합의되는 편입니다.
  2. 결제 조건 — 1년치를 미리 낼지 분기마다 나눠 낼지입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받는 시점이 달라 회사의 현금 사정이 달라집니다.
  3. 계약 기간 — 1년이 기본이고 2년이나 3년으로 묶기도 합니다. 기간과 할인은 늘 한 묶음으로 움직입니다.
  4. 해지 조건 — 중간에 그만둘 수 있는지, 낸 돈을 돌려받는지입니다. 고객사 법무가 가장 오래 붙잡는 자리입니다.
  5. 보안 요구사항 — 데이터를 어디에 두는지, 사고가 나면 며칠 안에 알리는지 같은 항목입니다. 기업 고객이면 쉰 개가 넘는 질문을 표로 받아 한 줄씩 답을 채워 보냅니다. 답을 채우려면 개발자가 붙어야 해서 영업 혼자 끝내지 못합니다.

페이지덱의 기업 계약에서는 금액보다 뒤쪽 두 항목에서 시간이 더 걸립니다. 가격은 한 번의 통화로 정해지는데 해지 조항과 보안 문답은 몇 주씩 오갑니다.

오가는 방식도 앞 단계와 다릅니다. 말로 합의한 내용을 매번 문서에 반영해 보내고, 상대는 그 위에 수정 표시를 얹어 돌려줍니다. 판본이 여러 벌 생기니 어느 것이 최신인지 한 사람이 챙기지 않으면 며칠 뒤 서로 다른 문서를 보며 이야기하게 됩니다.

양보는 한 방향으로 하지 않습니다. 할인을 내주면 계약 기간을 늘리거나 선불 결제를 받는 식으로 맞바꿉니다. 이때 어디까지 깎을 수 있는지를 그 자리에서 정하지 않으려고 할인 정책을 미리 만들어 둡니다. 담당자 재량은 10퍼센트까지, 그 위는 팀장, 20퍼센트를 넘으면 대표 승인처럼 단계를 나눠 두는 기준입니다.

다음 구간의 조건

넘어가려면 남은 이견이 없어야 하고, 없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목록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하는 항목은 넷입니다.

  1. 이견 목록 — 아직 합의되지 않은 항목을 적어 보고 그 수가 0이 되어야 합니다. 금액만 정해진 상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2. 결정권자의 동의 — 우리와 이야기해 온 담당자 말고 예산을 쥔 사람이 같은 조건에 동의했는지 확인합니다. 담당자 선에서만 합의된 조건은 결재선에서 다시 열립니다. 예산을 쥔 사람이 누구인지도 대개 이 구간에 와서야 정확히 드러납니다.
  3. 문서 한 벌 — 수정 표시가 오가던 문서가 최종본 한 벌로 정리되어야 합니다. 양쪽이 서로 다른 판본을 들고 있으면 서명 직전에 드러납니다.
  4. 절차와 날짜 — 누가 어떤 순서로 결재하고 언제 서명하는지를 날짜로 받습니다.

넷이 채워지지 않았는데 다음 칸으로 옮기면 그 건은 클로징에서 몇 주씩 머뭅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거의 끝난 거래로 잡혀 있으니 이번 달 예측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않으면 다음 달 계획이 그만큼 어긋납니다.

실무 용례

"협상 단계로 옮겼습니다. 금액은 합의됐고 해지 조항만 남았어요."

남은 항목이 하나라는 뜻이라, 듣는 쪽은 이번 달 안에 닫힐 가능성을 높게 봅니다.

"3년으로 가시면 15퍼센트까지 가능합니다. 대신 연간 선불 결제 조건입니다."

할인을 그냥 주지 않고 기간과 결제 시점으로 맞바꾸겠다는 제안입니다.

"그 조건은 저희 재량을 넘어서 대표 승인이 필요합니다."

당장 답하지 않겠다는 거절이 아니라, 정해진 승인 단계를 밟는 데 며칠이 걸린다는 안내입니다.

페이지덱에서는 수아가 이 구간을 맡고 조항이 걸리면 규원이 들어옵니다. 지난 분기의 한 기업 계약은 금액을 첫 통화에서 정했는데 해지 조항과 보안 문답으로 3주를 더 썼습니다. 수아가 매주 남은 항목을 세어 공유했고, 그 수가 넷에서 하나로 줄어드는 동안에는 예측에서 빼지 않았습니다.

흔한 오해

가격을 깎는 일이 곧 협상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가는 말 중에 숫자가 가장 또렷하니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구간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항목끼리 맞바꾸는 쪽에 가깝습니다. 가격만 손대면 그 낮아진 값이 다음 해 갱신 협상의 출발점이 되고, 같은 고객에게서 받는 금액이 해마다 조금씩 내려갑니다. 할인을 내줄 때 기간이나 결제 시점을 함께 받아 두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5퍼센트를 내주고 1년 계약을 3년으로 바꾸면 깎아 준 비율과 무관하게 받는 총액은 오히려 커집니다.

협상까지 왔으면 거의 성사된 것이라고 읽는 것도 흔합니다. 앞의 관문을 다 지나 왔으니 자연스러운 기대입니다. 하지만 결정권자와 법무가 처음 등장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라, 앞 단계에서 보이지 않던 이유로 무산되는 건이 적지 않습니다. 이 구간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예측에 넣으면 분기 마지막 주에 숫자가 크게 흔들립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용어무엇을 하는 구간인가협상과의 차이
클로징합의된 내용을 서명으로 확정하는 마지막 구간새 조건이 나오지 않는 자리입니다. 조건은 협상에서 정해지고 클로징에는 결재와 서명 절차만 남습니다. 클로징에서 새 요구가 나왔다면 협상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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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