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유형

Business Type

개념

제품을 누구에게 파는지로 사업을 가른 구분으로, 가격과 파는 방식과 만들 기능의 순서가 여기서 갈립니다.

등장 배경

"협업 문서 툴을 만듭니다" 라는 한 문장으로는 그 회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가격표에 월 9,900원이 적혀 있는지 별도 견적이라고만 적혀 있는지, 가입 화면이 아무 이메일이나 받는지 회사 도메인만 받는지, 혼자 들어와 바로 쓸 수 있는지 관리자가 계정을 만들어 줘야 하는지가 전부 열려 있습니다. 이 셋이 달라지면 만드는 물건도, 파는 방식도, 팀을 짜는 순서도 함께 달라집니다.

이 말이 자리 잡기 전에는 그 전제를 회의마다 풀어서 설명해야 했습니다. "돈은 회사가 내는데 실제로 쓰는 건 그 회사 직원이고요, 도입은 팀장이 결정하는데 결제는 재무팀이 하고요, 한 번 들어가면 3년은 씁니다" 같은 식입니다. 서너 문장을 들어야 상대가 겨우 그림을 잡았고, 그마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회의는 자주 이런 모양으로 엇갈렸습니다. 디자이너가 "가입 화면을 세 단계에서 한 단계로 줄이면 전환이 오릅니다" 라고 제안하면, 개발자가 "우리 고객은 관리자가 직원 계정을 한꺼번에 만들어 주는데요" 라고 답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인데 머릿속에 둔 고객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스스로 가입해 혼자 쓰기 시작하는 개인을 떠올렸고, 다른 사람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직원 200명을 한꺼번에 태우는 회사를 떠올린 겁니다. 전제를 맞추지 않은 채 화면만 놓고 이야기하면 이 차이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업 유형은 그 전제를 회의 앞에 먼저 꺼내 놓으려고 쓰는 말입니다. 제품이 SaaS인지, 그러니까 설치 없이 웹으로 접속해 매달 구독료를 내는 형태인지는 제품이 얹힌 틀을 가리킵니다. 제품 형태는 그것이 웹인지 모바일 앱인지 다른 프로그램이 불러다 쓰는 API 인지라는 껍데기를 가리킵니다. 사업 유형은 그 틀과 껍데기 안에서 돈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고 그 결정을 누가 내리는지를 가릅니다. 같은 SaaS 웹 서비스라도 이 답이 다르면 사실상 다른 사업입니다.

분야 구성

사업 유형 아래 묶인 용어는 세 갈래입니다. 셋은 한 회사를 서로 다른 질문으로 자릅니다. 누구에게 파는지(고객), 무엇이 앞장서 고객을 데려오는지(성장 방식), 한 고객이 얼마나 큰지(고객 규모)입니다.

고객은 돈을 내는 상대가 누구인지로 가르는 갈래입니다. 넷이 있습니다.

  1. B2B — 기업에 팝니다. 쓰는 사람과 돈 내는 사람이 갈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화면을 여는 건 현업 담당자인데 계약서에 서명하는 건 임원이고 결제는 재무팀이 합니다. 그래서 도입까지 서너 달이 걸리고, 대신 한 번 들어가면 잘 나가지 않습니다. 설득해야 할 상대도 하나가 아닙니다. 매일 쓸 실무자, 예산을 쥔 임원, 보안을 보는 담당자가 각각 다른 것을 묻습니다.
  2. B2C — 개인 소비자에게 팝니다. 쓰는 사람이 곧 결제하는 사람이라 결정이 몇 분 안에 끝납니다. 대신 한 사람이 내는 돈이 적어 사람 수로 채워야 하고, 마음이 바뀌면 다음 달에 바로 해지합니다. 그래서 가입 화면의 단계를 하나 줄이는 일이 매출에 곧바로 반영됩니다.
  3. B2B2C — 기업에 팔지만 실제로 쓰는 사람은 그 기업의 소비자입니다. 결제 기능을 쇼핑몰에 넣어 주면 계약은 쇼핑몰과 맺고 화면은 물건을 사는 개인이 봅니다. 만족시켜야 할 상대가 둘이라 요구사항이 서로 부딪칩니다. 쇼핑몰은 자기 브랜드를 앞세우고 싶어 하고 소비자는 결제 단계가 하나라도 적기를 바랍니다.
  4. B2G — 공공기관에 팝니다. 파는 절차 자체가 다릅니다. 입찰 공고를 보고 제안서를 내서 선정돼야 하고, 예산이 회계연도에 묶여 있어 계약이 연말에 몰립니다. 보안 요건 때문에 인터넷에 연결된 서비스를 그대로 쓰지 못하고 기관 내부망에 따로 설치해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계약이 끝난 뒤에도 몇 년간 유지보수 의무가 따라붙습니다.

성장 방식은 고객을 데려오는 일을 무엇이 앞장서서 하는지로 가르는 갈래입니다. 둘이 있고, 무엇을 택할지는 취향이 아니라 제품 값과 도입 절차가 정합니다.

  1. 제품 주도 성장 — 제품을 써 본 경험이 구매까지 끌고 갑니다. 무료로 가입해 혼자 쓰다가 같이 쓰는 사람이 늘면 스스로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는 흐름입니다. 영업 담당자를 거치지 않으니 고객 한 명을 데려오는 비용이 낮고, 대신 처음 5분 안에 쓸모를 보여 주지 못하면 그대로 떠납니다. 월 1만 원짜리 제품에 영업 담당자를 한 명 붙이면 한 건을 파는 데 드는 비용이 받는 돈을 금세 넘깁니다.
  2. 영업 주도 성장 — 영업 조직이 먼저 만나 설명하고 계약을 만듭니다. 값이 크고 도입에 여러 사람의 승인이 필요할 때 씁니다. 사람을 더 뽑으면 매출이 따라 오르는 구조라 계획을 세우기 쉬운 대신, 계약 한 건에 드는 비용이 커서 작은 고객에게는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한 건을 맺는 데 몇 달이 걸리니 그 기간을 버틸 현금도 함께 필요합니다.

고객 규모는 고객사 하나가 얼마나 큰지로 가르는 갈래입니다. 둘로 나눕니다.

  1. 엔터프라이즈 — 직원 수천 명 규모의 대기업을 상대하는 영역입니다. 계약 한 건이 연 단위로 억을 넘기고, 대신 보안 검토 질문지 300문항에 답하고 그 고객만 쓰는 기능을 따로 만들어 줘야 합니다. 첫 접촉부터 계약까지 1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대신 한 번 들어가면 3년, 5년 단위로 갱신되며 매출의 바닥을 깔아 줍니다.
  2. SMB — 직원 수십 명 안팎의 중소 규모 고객을 상대하는 영역입니다. 결정이 빠르고 도입이 한 달 안에 끝나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빨리 해지합니다. 한 건이 작으니 건수로 채워야 합니다. 고객사 500곳을 상대하려면 한 곳씩 찾아가는 방식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 제품이 스스로 안내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세 갈래는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가 따라오는 관계가 아닙니다. 겹쳐 읽는 좌표에 가깝습니다. 페이지덱은 기업에 팔면서(B2B) 무료로 써 보고 스스로 결제하게 하고(제품 주도 성장) 주로 중소 규모 고객을 받습니다(SMB). 같은 B2B라도 영업이 앞장서고 대기업만 상대하는 조합이면 하는 일이 거의 겹치지 않습니다. 가격표를 웹에 걸어 둘지 견적으로만 줄지, 첫 화면에 공을 들일지 영업 자료에 공을 들일지가 그 조합에서 갈립니다.

좌표가 바뀌면 만들 순서도 바뀝니다. 페이지덱이 대기업 계약 한 건을 받기로 하면 그날부터 우선순위 앞자리는 회사 계정 하나로 모든 직원을 로그인시키는 통합 인증과, 누가 언제 어느 문서를 열었는지 남기는 감사 기록으로 채워집니다. 지금 있는 고객사 수백 곳이 한 번도 요청한 적 없는 기능입니다. 사업 유형을 문서에 적어 두는 이유는 이 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합의해 두기 위해서입니다.

실무 용례

"우리 B2B인데 PLG로 가는 거라, 영업 담당자 뽑는 것보다 첫 화면 온보딩을 먼저 손봐야 해요."

고객은 기업이지만 도입을 시작하는 사람은 현장 실무자라서 제품이 스스로를 설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화면은 B2C 감각으로 만들어졌어요. 쓰는 사람이 곧 결제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있잖아요."

권한과 예산이 나뉘어 있는 기업 고객에게는 그 흐름이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엔터프라이즈로 올라가려면 지금 가격표로는 안 됩니다. 별도 계약 라인을 따로 열어야 해요."

공개된 월 요금제로는 큰 고객의 요구와 결제 절차를 받아 낼 수 없으니 판매 구조를 하나 더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페이지덱에서 이 말이 가장 자주 나오는 자리는 분기 계획 회의입니다. 수아가 직원 4,000명 규모의 회사에서 도입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가져오자 규원은 계약 금액이 지금 유료 고객 200곳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며 받자고 했습니다. 지현은 그 자리에서 이것이 사업 유형이 바뀌는 결정이라고 짚었습니다. 지금까지 페이지덱은 팀장이 카드로 결제하는 중소 규모 고객을 받아 왔는데, 이번 건은 보안 검토와 법무 검토를 거쳐 연 단위로 계약하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받는 돈의 모양이 달라지면 만드는 것도, 파는 사람도 달라집니다.

전제를 꺼내 놓고 나니 무엇을 포기하는지가 드러났습니다. 태오가 추산한 보안 요건 대응은 두 분기치 일이었고, 그동안 민서가 준비하던 가입 흐름 개편은 밀립니다. 그 개편을 전제로 현우가 잡아 둔 무료 가입자 유입 계획도 함께 밀립니다. 규원은 계약을 받되 붙는 인원을 둘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원래 계획대로 가기로 정했습니다. 사업 유형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이 회의는 기능 하나를 언제까지 만들 수 있느냐를 두고 끝났을 겁니다.

흔한 오해

가장 흔한 오해는 회사마다 사업 유형이 하나로 정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소개 자료에 "B2B SaaS 기업" 이라고 한 줄로 적히니 그것이 회사의 고정된 속성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제품별로도 다르고 같은 제품 안에서도 플랜별로 다릅니다. 개인 요금제와 팀 요금제와 기업 계약을 한 제품이 동시에 굴리는 일은 흔합니다. 하나로 정해져 있다고 믿으면 개인에게 맞춘 가입 흐름을 기업 고객에게도 그대로 들이밀거나, 반대로 혼자 써 보려는 사람에게 영업 담당자 연락처만 내미는 화면이 나옵니다. 둘 다 그 자리에서 사용자를 놓칩니다. 한 줄 소개는 가장 큰 덩어리를 가리킬 뿐이고, 화면을 만들 때 봐야 할 것은 이번 플랜을 누가 고르고 누가 결제하는지입니다.

두 번째는 어느 한쪽이 더 앞선 방식이라는 생각입니다. 제품 주도 성장은 비교적 새 이름으로 소개되고 영업 조직 없이 큰 회사가 사례로 자주 돌아다니니 그쪽이 다음 단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구분은 우열이 아니라 조건입니다. 한 사람이 혼자 써 보고도 값어치를 알 수 있는 제품이면 제품 주도 성장이 성립하고, 도입에 법무와 보안과 재무의 승인이 필요한 제품이면 화면을 아무리 다듬어도 혼자 결제까지 가지 못합니다. 조건을 보지 않고 방식만 고르면 영업 조직을 해체한 뒤 매출이 반년 동안 멈추거나, 반대로 개인 사용자만 있는 제품에 영업 담당자를 열 명 붙여 인건비만 태우는 일이 벌어집니다. 제품 주도 성장으로 시작했다가 큰 고객이 붙기 시작해 영업 조직을 나중에 얹는 회사도 많고, 순서가 반대인 경우도 그만큼 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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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