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계약
Pilot Contract
산출물
본 계약 전에 일부 팀이 정해진 기간만 제품을 써 보도록 맺는 짧은 계약으로, 도입 여부를 회의가 아니라 사용 결과로 정할 때 씁니다.
등장 배경
회사에 새 도구를 들이는 결정은 오랫동안 한 번에 크게 내려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300명이 쓸 제품을 3년 계약으로 사는데, 사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업 담당자의 설명과 한 시간짜리 시연뿐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팀 일에 맞는지, 기존에 쓰던 도구에서 자료를 옮길 수 있는지, 보안 담당자가 막지 않는지는 계약서에 서명한 뒤에야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구매를 검토하는 쪽은 결정을 계속 미뤘습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는 쪽이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실무 팀장은 "써 보고 싶긴 한데 3년을 어떻게 약속하겠어요" 하고 말했고, 파는 쪽은 "일단 계약하시고 안 맞으면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양쪽 모두 상대의 말을 담보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거래는 반년씩 멈춰 섰습니다.
파일럿 계약은 그 큰 결정을 두 개로 쪼갠 장치입니다. 먼저 한 팀 스물다섯 명이 석 달 동안 쓰는 작은 계약을 맺고, 그 결과를 보고 전체 도입을 정합니다. 사는 쪽은 잘못 사더라도 잃는 것이 석 달치 비용으로 줄고, 파는 쪽은 서명까지 걸리는 기간이 반년에서 3주로 줄어듭니다. 확인을 말로 하는 대신 실제 사용으로 대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구성 항목
파일럿 계약서에 들어가는 항목은 여섯 가지입니다. 본 계약서와 겹치는 것이 많지만, 뒤의 두 항목은 파일럿에만 있습니다.
- 기간 —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를 날짜로 적습니다. 보통 1개월에서 3개월입니다. 한 달은 사용자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끝나고, 여섯 달을 넘기면 판단이 계속 미뤄집니다.
- 범위 — 어느 팀 몇 명이 어떤 기능까지 쓰는지 적습니다. 마케팅팀 스물다섯 명, 유료 플랜 기능 전체, 외부 공유 기능 제외 같은 식입니다.
- 금액 — 무료로 할지 받을지, 받으면 얼마인지입니다. 정가의 절반쯤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 지원 범위 — 기간 중 누가 어디까지 도와주는지입니다. 담당자 지정, 자료 이전 지원, 응답 시간이 여기 들어갑니다.
- 성공 기준 — 무엇이 확인되면 잘된 것으로 볼지를 미리 숫자로 적습니다. 스물다섯 명 중 스무 명이 주 3회 이상 접속하고, 팀 문서 100건이 옮겨져 있으면 성공이라고 적는 식입니다.
- 종료 후 처리 — 기간이 끝나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입니다. 성공 기준을 채웠을 때 넘어갈 본 계약의 조건과 금액, 채우지 못했을 때의 종료 절차, 그때 쌓인 데이터를 어떻게 돌려주거나 지울지를 함께 적습니다.
뒤의 두 항목이 빠진 파일럿 계약은 기한만 있고 판단 기준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석 달이 끝날 때 "조금 더 써 보고 정하겠다" 는 답이 나오고, 같은 조건으로 연장하는 일이 두세 번 반복됩니다.
작성자와 독자
초안은 파는 쪽이 씁니다. 세일즈 담당자가 기간과 범위와 금액을 채우고, 견적서에 적었던 값과 같은지 맞춰 봅니다. 성공 기준은 담당자 혼자 정하지 않고 고객사 실무 팀장과 함께 정합니다. 파는 쪽이 정한 기준은 대개 제품이 잘하는 것에 맞춰지고, 사는 쪽이 안 볼 기준을 채워도 도입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읽는 사람은 셋입니다. 첫째는 고객사 실무 팀장입니다. 기간과 범위와 성공 기준을 보고, 자기 팀이 석 달 안에 그걸 해낼 수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둘째는 고객사 법무와 보안 담당자입니다. 이 사람들이 보는 것은 주로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고 끝난 뒤 어떻게 지워지는지입니다. 금액이 작아도 심사는 본 계약과 같은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파는 쪽의 내부 승인자입니다. 정가보다 낮은 금액이 적혀 있으니 할인 정책에 걸리는지, 그 할인이 본 계약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지를 확인합니다.
문서 자체가 짧은 대신 검토는 덜 짧습니다. 비밀유지계약이 먼저 오가야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고, 고객사가 이미 기본 계약서를 요구하는 규모라면 파일럿 단계에서 그것까지 함께 검토되기도 합니다.
실무 용례
"3년 계약은 어려우실 것 같아서, 마케팅팀만 석 달 파일럿으로 먼저 제안드리겠습니다."
큰 계약이 막혔으니 결정 크기를 줄여 문을 열겠다는 말입니다.
"파일럿 성공 기준을 뭐로 잡을지 이번 주에 같이 정해 주세요."
이 문장이 없으면 끝날 때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고객사는 파일럿이 두 번 연장됐어요. 이번 분기 예측에서 빼겠습니다."
기간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도입되지 않을 신호로 읽힌다는 말입니다.
페이지덱에서는 구성원 200명이 넘는 고객사에 대체로 파일럿을 먼저 제안합니다. 수아가 상담에서 3년 계약을 꺼냈을 때 상대가 머뭇거리면 그 자리에서 한 팀 석 달로 바꿔 제안하고, 성공 기준은 다음 통화에서 실무 팀장과 함께 적습니다. 기간이 시작되면 수아가 2주에 한 번씩 접속자 수와 옮겨진 문서 수를 확인하고, 목표의 절반에 못 미치면 남은 기간에 무엇을 도울지 규원과 상의합니다.
기간이 끝나는 날 회의는 짧습니다. 계약서에 적어 둔 숫자를 확인하고, 채웠으면 미리 정해 둔 조건으로 본 계약을 씁니다. 못 채웠으면 왜 못 채웠는지를 남기고 닫습니다. 이 회의가 길어지는 경우는 대개 성공 기준을 안 적었을 때입니다.
흔한 오해
파일럿을 무료 체험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둘 다 짧게 써 본다는 점이 같으니 그렇게 읽히기 쉽습니다. 다만 무료 체험은 누구나 버튼을 눌러 시작하고 아무 약속 없이 끝나는 반면, 파일럿은 서명이 오가는 계약이라 양쪽에 의무가 생깁니다. 파는 쪽은 적어 둔 지원을 해야 하고, 사는 쪽은 적어 둔 기준을 확인해 줘야 합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파는 쪽이 담당자를 붙여 석 달을 쓰고도 끝날 때 아무 답을 못 받습니다.
파일럿이 시작되면 계약은 사실상 확정이라고 보는 것도 흔한 오해입니다. 상대가 서명까지 했으니 남은 것은 절차뿐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파일럿은 확인하려고 만든 단계라서 확인에 실패할 수 있고, 실무 팀장이 만족했더라도 고객사 예산 담당자가 계약 기간을 3년으로 묶는 조건에서 다시 막히기도 합니다. 파일럿 단계의 거래를 성사된 것처럼 예측에 넣으면 분기 실적이 매번 목표에 못 미치고, 몇 번 반복되면 예측 자체를 아무도 믿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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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