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Contracting
단계
말로 합의한 가격과 기간과 책임을 문서에 옮겨 적고 서명까지 받아 내는 영업의 마지막 구간입니다.
등장 배경
영업의 진행 단계를 적어 두는 표에는 오랫동안 협상까지만 있었습니다. 상대가 하겠다고 말한 시점이 곧 끝이었고, 그 뒤에 남은 일은 서류 정리쯤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담당자는 통화에서 좋다는 답을 들은 날 성사로 보고했고, 실제 서명은 한 달 뒤에 났습니다. 한 달이 비면 그달의 숫자가 전부 어긋납니다. 이번 분기에 들어온다고 계산한 금액이 다음 분기로 밀리고, 그 금액을 믿고 잡아 둔 채용과 광고 예산이 함께 밀립니다.
페이지덱도 같은 자리에서 한 번 넘어졌습니다. 분기 마지막 주에 수아가 구성원 40명짜리 고객사 건을 다 됐다고 보고했는데, 규원이 어디까지 됐느냐고 묻자 상황이 드러났습니다. 실무 담당자는 쓰겠다고 했지만 그 회사 구매 부서는 발주 번호를 아직 안 냈고, 법무 검토자는 비밀유지계약부터 다시 쓰자고 했고, 보안 담당자는 스무 문항짜리 점검표를 보내온 상태였습니다. 세 사람 모두 그 주에 처음 등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 건은 6주 뒤에 서명됐습니다.
이 구간에 따로 이름이 붙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앞 구간까지 상대하던 사람과 이 구간에서 상대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실무 담당자는 제품이 자기 일을 얼마나 편하게 해 주는지를 보지만, 구매 부서와 법무 검토자는 이 거래에 회사가 어떤 위험을 지는지를 봅니다. 질문의 종류가 바뀌니 설득하는 방법도 바뀝니다. 제품 시연을 한 번 더 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대신 배상 상한이 적힌 문장과 데이터 보관 위치를 적은 답변서가 필요합니다.
거래가 여기서 멈추면 앞의 노력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점도 이 구간을 따로 관리하게 만듭니다. 문서 한 장이 빠져 있어 3주가 밀리는 동안 상대 회사의 예산 편성 시점이 지나가면, 여덟 달을 들인 거래가 다음 해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 구간을 따로 떼어 놓은 회사는 앞 단계에서부터 준비를 시작합니다. 제안하는 자리에서 결재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법무 검토에 보통 며칠이 걸리는지, 발주 번호를 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미리 물어 두는 식입니다. 물어보면 대개 알려 주는데, 묻지 않으면 그 세 가지는 서명 직전에야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분야 구성
이 이름 아래 묶인 용어는 세 갈래입니다. 오가는 문서가 한쪽이고, 계약을 어떤 모양으로 맺는지가 다른 쪽(형태)이며, 그 문서에 실제로 적히는 값이 나머지(조건)입니다.
문서는 이 구간에서 주고받는 종이들입니다. 네 가지가 있고, 대체로 아래 순서로 오갑니다.
- 비밀유지계약 — 서로 주고받은 정보를 밖에 알리지 않기로 하는 계약입니다. 대개 가장 먼저 오갑니다. 상대가 내부 자료를 보여 주거나 우리가 아직 안 나온 기능을 설명하려면 이것부터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쪽 모두에게 같은 의무를 거는 형태가 보통이고, 서명까지 하루에서 한 주쯤 걸립니다.
- 견적서 — 얼마에 무엇을 주는지 적어 내미는 문서입니다. 좌석 몇 개를 어느 플랜으로 몇 년간 쓰는지, 할인을 얼마나 붙이는지가 한 장에 들어갑니다. 유효 기간을 적는다는 점이 이 문서의 성격을 보여 줍니다. 이 값이 언제까지 유효한지 못 박아 두지 않으면 반년 전 견적을 들고 와 같은 가격을 요구받게 됩니다.
- 기본 계약서 — 두 회사가 거래할 때 공통으로 적용할 규칙을 한 번에 정해 두는 계약입니다. 배상 범위, 해지 방법,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같은 것들이 여기 들어갑니다. 한 번 맺어 두면 다음 거래에서는 수량과 금액만 적은 주문서 한 장으로 끝나기 때문에, 같은 고객사와 계속 거래할 생각이라면 첫 거래에서 시간을 들일 값어치가 있습니다.
- 발주서 — 고객사가 사겠다는 뜻을 공식 문서로 낸 것입니다. 구매 부서가 번호를 붙여 발행하고, 그 번호가 있어야 우리가 보낸 청구서가 상대 회사의 지급 절차에 올라갑니다. 실무 담당자가 아무리 하겠다고 해도 이 번호가 안 나왔으면 돈이 들어올 길이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이라, 성사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이 문서를 쓰는 회사가 많습니다.
형태는 계약을 어떤 크기로 맺을지 정하는 갈래입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파일럿 계약은 본 계약 전에 한 팀만 석 달쯤 써 보는 짧은 계약입니다. 쓸지 말지를 회의로 정하지 말고 실제로 써 보고 정하자는 장치라, 상대가 위험을 느낄 때 문을 여는 데 씁니다. 다만 끝난 뒤에 어떻게 할지를 안 적으면 시범 상태가 계속 이어집니다. 무엇이 확인되면 본 계약으로 넘어가는지, 안 넘어가면 언제 끝나는지를 계약서 안에 숫자로 적어 두어야 합니다.
조건은 문서마다 들어가는 값입니다. 세 가지가 있고, 셋 다 매출이 언제 얼마나 잡히는지에 곧바로 이어집니다.
- 계약 기간 — 계약이 유지되는 기간입니다. 1년이 기본이고, 2년이나 3년으로 길게 묶는 경우도 많습니다. 길게 묶는 대가로 값을 깎아 주는 것이 보통이라, 기간과 할인은 늘 한 묶음으로 협상됩니다.
- 자동 갱신 조항 — 따로 끝내겠다고 말하지 않으면 계약이 같은 조건으로 이어진다는 문장입니다. 함께 적히는 통보 기한이 실제 내용입니다. 만료 60일 전까지 알려야 한다고 적혀 있으면 만료 한 달 전에 마음을 바꿔도 한 해를 더 쓰게 됩니다.
- 할인 정책 — 누가 어디까지 깎아 줄 수 있는지 미리 정해 둔 기준입니다. 담당자 재량은 10퍼센트까지, 그 위는 팀장, 20퍼센트를 넘으면 대표 승인처럼 단계를 나눠 둡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분기 마지막 주마다 깎아 주고 보는 일이 반복되고, 다음 해 갱신 협상은 그 낮아진 값에서 시작합니다.
세 갈래는 한 거래 위에서 이어집니다. 비밀유지계약이 대화의 문을 열고, 견적서가 숫자를 올리고, 기본 계약서가 규칙을 정하고, 발주서가 돈이 나올 길을 엽니다. 형태는 이 순서를 한 번 접었다 펴는 장치이고, 조건은 어느 문서에 들어가든 같은 값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어디서 막혔는지 물을 때 답이 짧아집니다. 비밀유지계약에서 막혔다는 말과 발주서에서 막혔다는 말은 남은 기간이 전혀 다릅니다. 앞쪽은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뒤쪽은 조건이 다 정해지고 상대 회사 내부 절차만 남았다는 뜻입니다. 같은 진행 중이라는 말이 한쪽에서는 석 달을, 다른 쪽에서는 열흘을 가리킵니다. 파는 규모에 따라 네 문서를 다 쓰지 않기도 합니다. 개인이 카드로 결제하는 제품에는 약관 동의 한 번이 이 네 가지를 대신하고, 문서가 등장하는 것은 상대 회사에 구매 절차가 있을 때부터입니다.
실무 용례
"구두로는 다 됐는데 발주서가 아직 안 나왔어요. 이번 분기 숫자에는 못 넣겠습니다."
상대 실무자의 동의와 회사의 결정은 다르다는 뜻이고, 매출로 잡는 기준은 뒤쪽이라는 말입니다.
"2년으로 묶으면 15퍼센트까지 열 수 있어요. 그 이상은 대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할인을 기간과 맞바꾸겠다는 제안이자, 지금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알리는 말입니다.
"저쪽 법무가 우리 기본 계약서 대신 자기들 양식으로 가자고 합니다. 보안 부록까지 붙어서 2주는 더 봐야 해요."
문서의 주도권이 넘어갔으니 일정을 다시 잡자는 요청입니다.
페이지덱이 앞서 6주를 쓴 그 고객사와는 결국 순서를 새로 짰습니다. 수아가 첫 미팅 전에 비밀유지계약부터 보냈고, 서명을 받은 다음 석 달짜리 파일럿 계약을 걸었습니다. 그 계약서에는 두 문장이 들어갔습니다. 석 달 안에 매주 쓰는 사람이 30명을 넘으면 연 단위 계약으로 넘어가고, 못 넘으면 그날로 끝난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석 달째에 주간 사용자가 34명이 됐고, 수아는 그다음 주에 견적서를 냈습니다. 좌석 40개에 2년 계약, 할인 15퍼센트였습니다. 규원은 15퍼센트가 승인 범위 안이라 그 자리에서 통과시켰고, 대신 자동 갱신 조항의 통보 기한을 60일에서 30일로 줄여 달라는 상대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객사 구매 부서가 발주 번호를 낸 것은 견적서를 보낸 지 9일 뒤였고, 그날이 이 거래가 숫자로 잡힌 날입니다. 첫 거래에서 6주가 걸린 것과 견주면 두 배 넘게 빨라진 셈인데, 줄어든 것은 협상 시간이 아니라 기다린 시간이었습니다. 비밀유지계약과 보안 점검표를 파일럿 단계에서 미리 끝내 둔 덕분에 마지막에 새로 등장한 사람이 구매 담당자 한 명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아는 그 뒤로 첫 미팅마다 결재 절차와 법무 검토 기간을 묻는 질문을 넣었습니다.
흔한 오해
서명이 나면 이 구간이 끝난다고 보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담당자의 목표 금액이 서명일 기준으로 채워지니 그 자리에서 손을 떼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서명한 날 정해진 값들은 그날부터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계약 기간이 다음 해 어느 달에 협상이 다시 열리는지를 정하고, 자동 갱신 조항의 통보 기한이 그 협상을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를 정합니다. 서명 후에 아무도 이 날짜를 달력에 옮겨 적지 않으면, 갱신 두 달 전에 고객이 그만 쓰겠다고 말했을 때 이미 통보 기한이 지나 있어 양쪽이 껄끄러워집니다. 반대로 우리가 값을 올리려 할 때도 같은 기한에 걸립니다.
이 구간을 영업의 행정 잡무로 보는 생각도 흔합니다. 제품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 진짜 영업이고 문서 작업은 뒤처리라는 느낌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한 조건이 이 고객과 앞으로 몇 년을 어떻게 지낼지를 결정합니다. 분기 숫자를 맞추려고 언제든 3개월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준 거래는 서명은 났지만 연간 매출로 잡히지 않고, 대신 사용량을 늘리라는 일이 고객 성공 쪽으로 넘어갑니다. 조건을 느슨하게 풀어 닫은 거래일수록 나중에 손이 더 많이 갑니다. 닫는 것이 이 구간의 목표지만, 어떤 조건으로 닫았는지가 그다음 해의 일감을 정합니다. 이 구간의 성적을 서명 건수만으로 재지 않는 회사가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평균 할인율이 얼마였는지, 다년 계약 비중이 얼마인지, 서명까지 며칠이 걸렸는지를 함께 봅니다. 세 숫자가 나빠지는 분기는 대개 앞 단계에서 검증을 건너뛴 거래가 몰린 분기입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 용어 | 무엇을 가리키는가 | 계약과의 차이 |
|---|---|---|
| 클로징 | 망설이는 상대에게서 하겠다는 결정을 끌어내는 마지막 설득 | 사람을 상대하느냐 문서를 상대하느냐가 다릅니다. 저쪽은 결정권자의 마음이 움직이면 끝나지만, 이쪽은 그 결정이 난 다음에 구매 부서와 법무 검토자를 거쳐 서명과 발주 번호까지 가는 몇 주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클로징에 성공한 거래가 계약 구간에서 몇 달씩 멈춰 서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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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용어
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