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단계
Early Stage
단계
만들 것을 정한 회사가 제품을 내놓고 돈을 낼 고객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는 구간입니다.
등장 배경
한동안 회사를 부르는 기준은 나이였습니다. 창업 1년 차, 2년 차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같은 1년 차라도 어떤 팀은 아직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중이고 어떤 팀은 벌써 고객 서른 곳에게서 매달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같다는 것 말고는 닮은 데가 없는 두 회사에 같은 조언과 같은 기대가 갔습니다.
그래서 투자 검토 자리에서 같은 장면이 되풀이됐습니다. 투자자가 "지난 분기 성장률이 얼마인가요" 하고 물으면 창업자가 "유료 고객이 세 곳이라 성장률이라고 부를 숫자가 아직 없습니다" 하고 답합니다. 묻는 쪽도 답하는 쪽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가 지금 무슨 문제를 푸는 중인지에 이름이 없어서 서로 다른 질문지를 들고 마주 앉았을 뿐입니다.
초기 단계는 그 자리에 붙인 이름입니다. 회사가 지나는 길을 아이디어 단계, 초기 단계, 성장 단계, 스케일업으로 끊어 두고 두 번째 칸에 이 이름을 두었습니다. 칸마다 푸는 문제가 다르니 던질 질문과 볼 숫자도 다르다는 합의가 이 구분에 담겨 있습니다. 초기 단계에 성장률을 묻지 않는 것은 봐주는 게 아니라 아직 그 숫자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간의 특징
제품은 있고 고객은 아직 적은 상태가 이 구간의 모습입니다. 구성원은 다섯에서 스무 명 남짓이고, 파는 사람이 따로 없어 창업자가 직접 고객을 만납니다. 매출은 0은 아니지만 회사를 굴릴 만큼은 아니어서 대개 시드 투자로 받은 돈을 씁니다. 시드는 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찾는 동안 버틸 자금으로 받는 첫 투자입니다.
이 구간의 특징은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 숙제가 하나뿐입니다. 제품 시장 적합성, 곧 만든 제품이 어떤 시장의 수요와 맞물린 상태를 찾는 일입니다. 이 구간에서 하는 거의 모든 결정이 이 한 가지로 설명됩니다.
- 보는 숫자가 매출이 아니라 리텐션입니다. 리텐션은 쓰던 사용자가 다시 돌아오는 비율입니다. 이번 달에 처음 들어온 팀 100곳 가운데 다음 달에도 문서를 만드는 곳이 15곳이라면 아직 맞물리지 않았고, 60곳이라면 맞물린 쪽에 가깝습니다.
- 제품이 완성품이 아닙니다. MVP, 그러니까 가설 하나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로 내보내고 반응을 보며 고칩니다. 기능을 다 갖춘 뒤에 내놓으면 무엇이 틀렸는지 알아내는 데 반년이 더 듭니다.
- 방향을 트는 일이 실패가 아닙니다. 피벗은 배운 것을 근거로 대상이나 문제를 바꾸는 결정인데, 네 구간 가운데 이것이 정상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자리는 여기뿐입니다.
돈이 버티는 기간도 이 구간을 압박합니다. 런웨이는 지금 쓰는 속도로 현금이 몇 달 버티는지를 나타낸 값이고, 시드를 받은 회사는 보통 12개월에서 18개월을 잡습니다. 그 안에 다음 칸으로 넘어갈 근거를 만들어야 다음 투자를 받거나 스스로 버틸 수 있습니다.
다음 구간의 조건
제품을 내일 닫으면 화를 낼 고객이 생겼을 때 다음 칸으로 넘어갑니다. 말이 헐거워 보이지만 확인하는 방법은 구체적입니다.
- 리텐션 곡선이 어느 선에서 멈춥니다. 다시 오는 비율이 매달 떨어지다가 40퍼센트쯤에서 더 안 떨어지고 평평해지면, 그 40퍼센트가 제품 없이는 못 지내는 고객입니다. 끝까지 0을 향해 내려가면 아직 아닙니다.
- 들어오는 고객이 한 유형으로 모입니다. 회의록을 많이 쓰는 30명 안팎의 팀이 계속 들어온다면 누구에게 팔지가 정해진 것입니다. 업종도 규모도 제각각이면 우연히 몇 곳이 들어온 것입니다.
- 팔지 않아도 들어옵니다. 창업자가 직접 설득한 고객 말고, 쓰던 사람이 옮긴 회사에서 다시 결제하거나 소개를 받아 들어오는 고객이 생깁니다.
세 가지가 함께 나타나면 질문이 바뀝니다. 무엇을 만들까에서 어떻게 더 많이 팔까로 넘어가고, 그때부터가 성장 단계입니다. 반대로 열두 달을 써도 셋 중 하나도 오지 않으면 더 버티는 대신 대상이나 문제를 바꿉니다.
실무 용례
"저희는 아직 초기 단계라 영업 조직을 만들 때가 아닙니다."
파는 방법을 늘리기 전에 팔리는 제품인지부터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초기 단계 회사에 성장률을 물으면 답이 안 나와요. 리텐션을 보셔야죠."
고객 수가 적어 비율이 크게 튀니 다시 오는 비율로 판단하라는 요구입니다.
"이번 펀드는 초기 단계만 봅니다. 성장 단계는 다른 팀이 맡아요."
투자자가 검토 범위를 제품과 시장을 아직 맞춰 가는 회사로 좁혀 두었다는 말입니다.
페이지덱이 이 구간을 지날 때 구성원은 열두 명이었습니다. 규원이 매주 보던 표에는 매출이 아니라 두 줄이 있었습니다. 이번 달에 처음 들어온 팀이 몇 곳인지, 그 가운데 지난달에 처음 들어온 팀이 몇 곳이나 남아 있는지입니다. 두 번째 줄이 석 달째 20퍼센트 근처에 머물자 규원은 기능을 더 만드는 대신 남아 있는 팀 열다섯 곳을 전부 만나 보자고 정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남은 팀들이 모두 회의록을 반복해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페이지덱은 대상 고객을 그쪽으로 좁혔습니다. 다음 분기에 같은 줄이 45퍼센트에서 평평해졌습니다. 규원이 시리즈 A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숫자를 보고 난 뒤였습니다.
흔한 오해
초기 단계를 회사의 나이로 읽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아이디어 단계 다음에 오는 칸이니 창업 직후의 짧은 시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푸는 문제입니다. 창업 5년 차에 구성원이 서른 명이어도 제품이 아직 특정 고객층에 붙지 않았다면 그 회사는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반대로 1년 만에 이 칸을 지나가는 회사도 있습니다. 나이로 읽으면 판단이 뒤집힙니다. 3년이 지났으니 이제 성장 단계라고 여기고 영업 인력을 여섯 명 뽑는 회사가 나오는데, 팔 수 있는 제품이 아직 없으면 그 여섯 명은 할 일 없이 비용만 만듭니다.
빨리 키우는 것이 이 구간의 목표라는 오해도 흔합니다. 구간 이름이 성장 앞에 놓여 있으니 성장을 준비하는 자리로 보이지만, 여기서 숫자를 서둘러 올리면 오히려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광고로 사용자 1만 명을 모으면 다음 달에 얼마나 남는지가 흐려지고, 제품이 맞물려서 남은 것인지 돈을 써서 데려온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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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