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단계
Deal Stage
개념
거래 한 건이 첫 연락부터 계약까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미리 정한 이름 하나로 표시한 값입니다.
등장 배경
진행 상황을 물으면 백분율로 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건은 한 70퍼센트 왔어요." 문제는 70이 무슨 뜻인지 말한 사람만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제안서를 보낸 상태가 70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고객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만으로 70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목록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숫자를 읽게 됐습니다. 담당자 세 명이 각자 70퍼센트라고 적은 세 건으로 대표가 이번 달 매출을 계산하면, 실제로 들어오는 돈은 그 값의 절반일 수도 세 배일 수도 있었습니다. 주관적인 확신을 더해 봐야 합계도 주관적인 확신입니다.
딜 단계는 그 자리에 정해진 칸을 놓은 것입니다. 70퍼센트 대신 "제안" 이라는 이름을 쓰고,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그 칸에 들어가는지를 미리 적어 둡니다. 판단의 폭을 좁히는 것이 목적입니다. 감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이 같은 뜻으로 같은 칸을 쓰게 만듭니다.
공장에서 부품이 어느 공정까지 왔는지 표시하는 것과 구조가 같습니다. 다른 점은 거래가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어 뒤로 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작동 방식
단계는 거래가 지나가는 자리를 순서대로 끊어 놓은 값이고, 회사마다 이름은 달라도 형태는 대개 다섯입니다.
- 디스커버리 콜 — 고객의 상황과 문제를 파악하는 첫 상담입니다. 제품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묻는 자리입니다.
- 데모 — 제품을 직접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첫 상담에서 들은 불편이 화면에서 어떻게 없어지는지 짚는 쪽이 기능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는 쪽보다 다음 단계로 잘 넘어갑니다.
- 제안서 — 제공 범위와 가격과 기간을 문서로 정리해 보내는 단계입니다.
- 협상 — 가격과 조건을 맞춰 가는 과정입니다. 오가는 것은 금액만이 아니라 결제 시점, 계약 기간, 해지 조건입니다.
- 클로징 — 서명 절차와 결재선을 확인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핵심은 칸의 개수나 이름이 아니라 칸 사이를 넘어가는 조건입니다. 조건을 한 문장씩 적어 두지 않으면 같은 회사 안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단계를 올립니다. "데모를 한 다음 날 제안 단계로 올린다" 가 아니라 "고객이 구매 시점을 말했고 결재선을 확인했을 때 제안 단계로 올린다" 처럼 씁니다. 앞쪽은 담당자가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뒤쪽은 고객이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뒤쪽만 예측에 쓸 수 있습니다.
단계는 CRM 같은 고객 접촉 이력 관리 시스템에서 딜 한 줄의 칸 하나로 저장됩니다. 파이프라인 화면에서 세로 칸이 나뉘어 보이는 것이 이 값입니다.
뒤로 내려가는 것도 정상입니다. 협상까지 갔다가 담당자가 바뀌어 다시 설명해야 하면 데모 단계로 내립니다. 내리기 싫어서 그대로 두면 그 건은 합계에서 실제보다 높은 확률로 잡힙니다. 마지막은 두 방향뿐입니다. 수주로 닫거나 실주로 닫습니다.
쓰이는 곳
이 값은 혼자 쓰이지 않고 언제나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묶는 재료로 쓰입니다.
첫 번째는 매출 예측입니다. 단계마다 지난 성사율을 곱해 더하는 방식이 가장 흔합니다. 제안 단계에 2천만 원짜리 열 건이 있고 그 단계의 지난 성사율이 40퍼센트였다면 8천만 원을 기대합니다. 성사율을 단계별로 따로 두는 이유는 첫 상담에 있는 건과 협상에 있는 건이 같은 확률일 리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어디서 막히는지 찾는 일입니다. 단계마다 몇 건이 들어와 몇 건이 넘어갔는지를 세면 특정 칸에서만 유독 많이 빠지는 지점이 보입니다. 데모까지는 잘 가는데 제안에서 절반이 사라진다면 문제는 제품이 아니라 가격이거나 제안서 자체일 가능성이 큽니다.
세 번째는 담당자에게 다음 할 일을 정해 주는 일입니다. 단계가 정해지면 지금 해야 할 행동도 대체로 정해집니다. 제안 단계에 있는 건에는 결재선을 확인하는 일이, 클로징에 있는 건에는 서명 일정을 잡는 일이 붙습니다. 신입이 들어왔을 때 무엇부터 하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것도 이 구조 덕분입니다.
실무 용례
"이 건 아직 데모예요. 제안으로 올리기엔 예산 얘기를 못 들었어요."
넘어가는 조건을 기준으로 단계를 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록을 부풀리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안 단계에서 빠지는 비율이 지난 분기보다 높아요."
특정 칸에서만 이탈이 늘었다는 관찰입니다. 가격이나 제안서를 봐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그 건 협상에서 데모로 내렸습니다. 담당자가 바뀌었어요."
거래가 뒤로 갔다는 보고입니다. 기록을 실제와 맞추는 작업입니다.
페이지덱에서는 수아가 매주 단계별로 묶인 목록을 봅니다. 기업 고객 건은 협상 단계에서 오래 머무는 편인데, 보안 검토와 법무 검토가 그 자리에서 함께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협상에 3주 이상 머문 건은 따로 표시해 두고 무엇이 막혀 있는지 한 줄씩 적습니다.
규원이 이 목록을 볼 때 보는 것은 합계가 아니라 분포입니다. 총액이 같아도 대부분이 첫 상담에 몰려 있으면 이번 분기에 들어올 돈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절반이 클로징에 있으면 다음 달이 바쁘고 그다음 달이 비게 됩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채용을 할지 미룰지가 이 분포에서 갈립니다.
흔한 오해
단계를 담당자의 진척도로 읽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단계가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니 그럴듯합니다. 그래서 주간 회의에서 "이번 주에 세 건 올렸습니다" 가 성과 보고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값이 나타내는 것은 담당자가 한 일이 아니라 고객이 어디까지 왔는지입니다. 앞의 기준으로 운영하면 사람들은 단계를 올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반년 뒤에는 클로징에 열 건이 모여 있는데 실제로 닫히는 건 두 건인 목록이 남습니다. 그 목록으로 세운 채용 계획과 매출 계획이 함께 틀어집니다.
단계가 많을수록 관리가 잘 된다고 보는 것도 오해입니다. 잘게 나누면 더 정확해질 것 같지만, 칸이 열 개를 넘어가면 사람들이 매번 어디에 넣을지 고민하게 되고 결국 아무 데나 넣습니다. 칸을 늘리기 전에 확인할 것은 지금 있는 칸의 넘어가는 조건이 한 문장으로 적혀 있는지입니다. 조건이 없는 상태에서 칸만 늘리면 부정확한 기록이 더 세밀해 보이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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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