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책정

Pricing

방법

제품에 얼마를 받을지 정하는 일로, 고객이 느끼는 값어치와 회사가 남겨야 할 이익 사이에서 숫자 하나를 고르는 결정입니다.

등장 배경

물건을 만들어 팔던 시절에는 값을 정하는 일이 계산에 가까웠습니다. 나사 하나를 만드는 데 재료와 인건비로 800원이 들면 1,200원에 팔았고 400원이 남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더 팔려면 더 만들어야 하고 더 만들면 돈이 더 드니, 원가가 값의 바닥을 자연스럽게 잡아 줬습니다.

소프트웨어는 그 바닥이 사라진 자리에 놓입니다. 문서 협업 도구를 한 사람이 더 쓴다고 회사가 쓰는 돈이 눈에 띄게 늘지 않습니다. 서버와 저장 비용이 몇백 원 오르는 정도라 원가만 보고 값을 매기면 월 500원짜리 제품이 나옵니다. 값을 정할 근거가 제품 안쪽에 없으니 바깥을 봐야 합니다. 고객이 이 제품을 얼마짜리로 느끼는지, 같은 문제를 푸는 다른 제품이 얼마를 받는지가 그 바깥입니다.

근거가 밖에 있다는 걸 모르면 회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끝납니다. 페이지덱의 첫 요금제는 회의 한 번에 정해졌습니다. 경쟁 제품이 월 9,900원이니 우리도 9,900원으로 하자는 말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고, 왜 그 숫자인지 적어 둔 문서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2년 뒤 수아가 "이 가격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하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근거가 없으면 그 뒤의 결정이 전부 흔들립니다. 고객사가 20퍼센트 할인을 요구할 때 어디까지 깎아도 되는지 기준이 없어 담당자마다 다르게 답하고, 그렇게 나간 할인율이 계약서마다 달라 나중에는 실제로 받은 평균 금액조차 셈하지 못합니다. 기능을 서른 개 더 붙이고도 값을 올릴 엄두를 못 내는 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처음 9,900원이 무엇을 근거로 한 숫자인지 모르니 지금 얼마가 맞는지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

가격 책정은 이 숫자에 근거를 붙이는 자리입니다. 값은 비즈니스 모델에서 돈이 실제로 들어오는 지점이자 가치 제안이 얼마짜리인지를 선언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 모델은 누구에게 무엇을 주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의 구조이고, 가치 제안은 고객이 이 제품을 골라야 할 이유를 한 문장으로 줄인 것입니다. 월 3,000원을 부르는 제품과 월 30만 원을 부르는 제품은 기능이 같아도 서로 다른 약속을 하는 셈이라, 값은 숫자이면서 동시에 메시지입니다.

분야 구성

가격 책정 아래 묶인 용어 다섯 개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숫자를 무엇에 기대어 잡는지가 기준, 그 숫자가 고객 머릿속의 숫자와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조사, 정한 숫자를 어떤 모습으로 내보이는지가 전술입니다. 순서대로 밟으면 근거를 세우고 물어서 확인한 뒤 화면에 올리는 흐름이 됩니다.

기준은 값의 출발점을 어디에 두느냐를 가르는 갈래이고 셋이 여기 속합니다. 셋은 서로 다른 곳을 쳐다봅니다.

  1. 가치 기반 가격 — 고객이 이 제품으로 얻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그 일부를 값으로 받습니다. 문서 정리에 주당 4시간을 쓰던 팀이 1시간으로 줄었다면 세 시간치 인건비가 고객이 얻은 값어치입니다. 월 12만 원쯤 된다면 그중 3만 원을 부르는 식입니다. 셋 중 가장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지만 고객이 무엇을 얼마나 아꼈는지 먼저 알아내야 해서 손이 가장 많이 갑니다.
  2. 원가 기반 가격 — 제품 하나를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을 셈하고 그 위에 이윤을 얹습니다. 계정 하나에 서버와 저장 비용이 월 2,000원 든다면 30퍼센트를 붙여 2,600원을 부릅니다. 계산이 분명해 설명하기 쉬운 대신, 소프트웨어는 사용자가 한 명 늘어도 드는 돈이 거의 늘지 않아 이 방식만 쓰면 값이 터무니없이 낮게 잡힙니다.
  3. 경쟁 기반 가격 — 같은 문제를 푸는 다른 제품의 값을 늘어놓고 그 옆에 자리를 잡습니다. 경쟁 제품이 월 1만 2,000원이면 비슷하게 가거나, 기능을 덜어 내고 7,000원으로 아래에 붙거나, 더 얹어 2만 원으로 위에 섭니다. 시장에 이미 기준이 서 있을 때 빠르게 쓸 수 있지만 남이 정한 숫자를 그대로 물려받습니다. 경쟁사가 근거 없이 매긴 값이었다면 그 근거 없음까지 따라옵니다.

조사는 정한 숫자가 고객이 생각하는 범위 안에 있는지 확인하는 갈래이고 하나가 여기 속합니다.

  1. 반 웨스텐도르프 — 고객에게 값을 묻되 "얼마면 사겠습니까" 라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네 가지를 묻습니다. 얼마부터 비싸다고 느끼는지, 얼마부터 너무 비싸 안 사겠는지, 얼마부터 싸다고 느끼는지, 얼마부터 너무 싸서 품질이 의심스러운지입니다. 네 답을 겹쳐 놓으면 위아래가 막힌 구간 하나가 남고 그 구간 안에서 값을 고릅니다. 사람은 적정 가격을 직접 대지 못해도 비싸다와 싸다의 경계는 꽤 일관되게 답한다는 점을 이용한 설문입니다.

전술은 정한 숫자를 어떻게 보여 주느냐를 다루는 갈래이고 여기도 하나입니다.

  1. 가격 앵커링 — 값을 내보이기 전에 비교 기준을 먼저 세웁니다. 월 3만 원짜리 요금제를 혼자 두면 비싸 보이지만 옆에 9만 원짜리 상위 요금제를 놓으면 같은 3만 원이 알맞아 보입니다. 숫자는 그대로인데 읽히는 방식만 바뀌는 자리라, 앞의 넷이 얼마를 받을지를 정한다면 이쪽은 그 값이 어떻게 보일지를 정합니다.

다섯 개는 하나만 골라 쓰는 목록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원가로 바닥을 긋고, 경쟁 제품으로 대략의 띠를 확인하고, 고객이 얻는 값어치로 위쪽 한도를 재고, 설문으로 그 안의 한 지점을 고른 뒤, 화면에서는 비교 기준을 함께 놓는 식으로 겹쳐 씁니다. 원가는 이 아래로는 팔수록 손해라는 하한이고 가치는 이 위로는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상한이라, 둘 사이가 고를 수 있는 구간입니다.

그 구간에서 어디를 고를지는 유닛 이코노믹스가 좁혀 줍니다. 고객 한 명에게서 버는 돈과 그 한 명을 데려오는 데 드는 돈을 견줘 남는지를 보는 계산인데, 값을 낮게 잡을수록 이 간격이 줄어듭니다. 고객 한 명 데려오는 데 5만 원이 드는데 월 3,000원을 받으면 열일곱 달을 써야 본전이고, 평균 여섯 달 만에 나가는 제품이라면 팔수록 손해가 쌓입니다. 이 계산이 맞지 않으면 앞의 다섯을 아무리 정교하게 밟아도 고른 숫자가 틀린 숫자입니다.

실무 용례

"이 기능 하나 붙인 걸로 가격을 올릴 근거가 될까요?"

새 기능이 고객이 얻는 값어치를 실제로 얼마나 늘렸는지 재 보자는 제안이고, 재 보지 않았다면 올리지 말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10퍼센트까지는 제 선에서 조정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할인 한도가 미리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는 결재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도가 정해져 있다는 것 자체가 값에 근거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우리가 싼 게 아니라 싸 보이는 게 문제예요."

금액 자체보다 그 금액이 읽히는 방식을 손보자는 말이고, 요금제를 늘어놓는 순서나 비교 대상을 바꾸자는 제안으로 이어집니다.

페이지덱의 요금제 개편은 규원이 던진 질문 하나에서 시작됐습니다. 기능이 2년 동안 두 배로 늘었는데 값은 9,900원 그대로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지현이 먼저 한 일은 새 값을 부르는 게 아니라 지금 값의 근거를 찾는 일이었는데, 찾을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셋을 나눠 재기로 했습니다. 지현은 고객사 열두 곳에 문서 정리에 쓰던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물었고, 평균 주당 세 시간이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현우는 같은 문제를 푸는 제품 여섯 개의 요금제를 표로 만들어 월 8,000원에서 2만 5,000원 사이에 몰려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수아는 최근 1년 계약서에서 실제로 받은 금액을 뽑았는데, 명목상 9,900원인 값이 할인 뒤에는 6,200원에서 9,900원까지 흩어져 있었습니다.

세 숫자를 겹쳐 놓자 대화의 모양이 바뀌었습니다. 값을 올릴지 말지를 놓고 감으로 겨루던 자리가, 1만 4,000원이라는 후보를 두고 고객이 아끼는 시간과 경쟁 제품의 띠와 지금 실제로 받는 금액 사이에서 어디에 설지를 고르는 자리가 됐습니다.

흔한 오해

값을 낮게 부를수록 더 많이 팔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싸면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상식에 가깝고, 실제로 가입 수만 보면 그렇게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에서는 값이 품질을 알리는 신호로도 읽힙니다. 회사 문서를 맡길 도구를 고르는 담당자에게 월 2,000원짜리 제품은 싼 제품이 아니라 미덥지 않은 제품으로 보입니다. 값을 절반으로 내려 가입이 두 배가 돼도 한 명당 버는 돈이 절반이면 매출은 그대로인데 고객 문의와 서버 부담만 두 배가 되고, 그중 상당수가 애초에 돈을 낼 생각이 없던 사람이라 몇 달 안에 빠져나갑니다.

한 번 정하면 끝나는 일로 여기는 것도 자주 어긋납니다. 요금제 화면은 한 번 만들면 좀처럼 바꾸지 않으니 값도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제품은 계속 변하고 시장 값도 함께 움직입니다. 2년 동안 기능이 두 배가 됐는데 값이 그대로면 고객은 같은 돈으로 두 배를 받는 셈이고, 그 차액은 회사가 받지 못하고 흘려보낸 돈입니다. 이 손해는 청구서에 찍히지 않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쌓입니다. 그래서 값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다시 보고, 올리지 않기로 했다면 왜 올리지 않았는지를 남겨 둡니다. 근거를 남겨 두면 다음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재지 않아도 됩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용어무엇을 정하는가가격 책정과의 차이
과금 모델무엇을 세어 받을지계정 수로 셀지 쓴 양으로 셀지 같은 단위를 정합니다. 가격 책정이 그 단위 하나에 붙는 금액을 정하니, 과금 모델이 "무엇을 세는가" 라면 가격 책정은 "하나에 얼마인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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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