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재무 책임자
Chief Financial Officer
역할
회사의 돈이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나가는지를 총괄하고, 그 숫자를 근거로 채용과 투자 시점을 정하는 경영진 자리입니다.
등장 배경
돈을 기록하는 사람은 회사가 작을 때도 있습니다. 세금 신고를 맡기는 외부 회계 사무소가 있고, 월말에 통장과 장부를 맞추는 사람도 곧 생깁니다. 없는 것은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기록으로 판단하는 자리입니다.
빈자리는 이런 장면으로 나타납니다. 개발팀은 내년에 다섯 명을 더 뽑아야 한다고 하고, 마케팅은 광고비를 두 배로 올리자고 하고, 세일즈는 대형 고객에게 40퍼센트를 깎아 주자고 합니다. 셋 다 근거가 있고 셋 다 회사를 키우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셋을 다 하면 잔고가 언제 바닥나는지, 하나만 해야 한다면 어느 쪽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회의에 없습니다. 대표가 통장 잔고를 보며 감으로 자릅니다.
최고 재무 책임자는 그 판단을 맡으라고 만든 자리입니다. 숫자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숫자로 결정하는 일이 본업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생기는 시점은 회사가 커져서가 아니라 결정 하나의 무게가 커졌을 때입니다.
하루 업무
하루의 절반은 이미 벌어진 숫자를 확인하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숫자를 다투는 데 씁니다. 자주 반복되는 일은 다섯 가지입니다.
- 월 마감을 검토합니다. 회계 담당자가 닫은 한 달 치 장부를 받아 재무제표 세 장으로 정리된 결과를 봅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숫자가 맞았는지가 아니라 계획과 얼마나 벌어졌는지입니다. 광고비가 계획보다 3,000만 원 많이 나갔으면 왜 그런지를 그 주 안에 묻습니다.
- 남은 시간을 셉니다. 지금 속도로 현금이 몇 달 버티는지를 뜻하는 런웨이를 매달 다시 계산합니다. 남은 달 수에 따라 이번 분기에 할 수 있는 말이 달라집니다.
- 계획을 고칩니다. 앞으로 열두 달의 매출과 비용을 적은 표를 분기마다 손봅니다. 채용을 한 명 늘리면 그 표가 몇 달 뒤에 어떻게 바뀌는지를 그 자리에서 보여 주는 것이 이 일의 쓸모입니다.
- 이사회와 투자자를 상대합니다. 분기마다 실적과 계획을 정리해 설명하고, 목표를 못 맞춘 달은 그 이유와 대응을 함께 냅니다. 매달 반복해서 들어오는 매출이 얼마이고 그중 떠나간 몫이 얼마인지 같은 SaaS 재무 지표가 이 자리의 주된 언어입니다.
- 조건을 판단합니다. 대형 계약의 할인율, 연납과 월납 중 무엇을 밀지, 결제 조건을 30일로 할지 60일로 할지 같은 것입니다. 영업 조건 하나가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시점을 두 달 밀어내면 그건 할인만큼의 비용입니다.
지분이나 대출로 자금을 마련하는 투자 유치 기간에는 이 다섯 가지가 뒤로 밀립니다. 처음 만나서 돈이 통장에 들어오기까지 서너 달이 걸리고, 회사 값을 얼마로 잡을지 다투는 기업가치 평가 협상도 이 기간에 이뤄집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
이 자리는 혼자 숫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숫자를 결정이 일어나는 자리로 옮기는 것이 이 자리의 일입니다.
안쪽에는 재무 조직이 있습니다. 거래를 규칙대로 기록하고 세무를 처리하는 회계 담당자가 지나간 숫자를 대고, 계획을 세우고 실적과의 차이를 분석하는 FP&A가 앞으로의 숫자를 댑니다. 회사가 작으면 이 둘을 한 사람이 겸하고, 그 사람의 표를 이 자리가 직접 들여다봅니다.
바깥쪽으로는 대표와 다른 경영진을 상대합니다. 세일즈 쪽과는 할인과 결제 조건을, 엔지니어링 쪽과는 클라우드 비용을, 인사 쪽과는 채용 인원과 연봉 범위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화가 잘 굴러가려면 상대의 언어로 숫자를 옮겨 줘야 합니다. 개발자에게 영업이익률을 설명하는 대신 서버 비용이 지금 속도로 늘면 넉 달 뒤 채용 한 자리가 사라진다고 말하는 쪽이 통합니다.
회사 밖에는 투자자와 이사회, 은행, 외부 회계법인이 있습니다. 같은 숫자를 목적에 따라 다르게 내는데, 투자자에게는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를, 회계법인에는 규칙대로 적혔는지를 보여 줍니다.
실무 용례
"그 조건이면 런웨이가 두 달 짧아집니다. 대신 뭘 미룰지 같이 정해야 해요."
반대가 아니라 맞바꿀 것을 요구하는 말입니다. 이 자리의 답은 대개 이 모양입니다.
"이번 분기 숫자는 맞았는데 계획이 틀렸던 겁니다. 계획을 다시 짭시다."
실적이 아니라 예측이 빗나갔다는 진단이고, 사람이 아니라 표를 고치자는 제안입니다.
"이 숫자로는 다음 라운드를 못 갑니다. 지금 시작해야 넉 달 뒤에 돈이 들어옵니다."
투자 유치에 걸리는 시간을 역산해 착수 시점을 못 박는 말입니다.
페이지덱에는 아직 이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구성원 45명에 재무 담당자 한 명이 있고, 그 위의 판단은 규원이 합니다. 지난 분기에 수아가 연 계약 1억 2,000만 원짜리 건을 가져왔는데 조건이 분기 후불이었습니다. 수아에게는 올해 최대 계약이었고, 규원이 본 것은 그 돈이 9월에야 통장에 들어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규원은 계약을 막지 않고 조건만 바꿔 오게 했습니다. 선납 20퍼센트에 나머지를 반기로 나누고, 대신 할인을 2퍼센트 더 얹었습니다. 계약을 깎았다기보다 들어오는 시점을 샀습니다. 이런 결정이 분기마다 서너 건씩 쌓이면 그때가 이 자리를 따로 두는 시점입니다.
흔한 오해
비용을 깎는 사람으로 읽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예산 회의에서 반대하는 쪽에 앉아 있으니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하는 일은 총액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돈을 어디에 둘지 고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케팅 예산을 두 배로 올리는 결정이 이 자리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깎는 사람으로만 보면 조직은 승인 나기 쉬운 금액으로 쪼개 올리기 시작하고, 결정에 쓸 숫자가 먼저 망가집니다.
회계를 총괄하는 자리로 읽는 것도 흔합니다. 둘 다 돈을 다루니 자연스러운 오해입니다. 그런데 회계는 이미 벌어진 일을 정해진 규칙대로 적는 일이라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고, 이 자리의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두고 고르는 것이라 해석이 전부입니다. 회계를 잘하는 사람을 이 자리에 앉히면 장부는 깔끔해지는데 결정은 여전히 대표 혼자 내리는 상태가 남습니다. 지분이 누구에게 얼마나 가 있는지 적은 주주명부도 이 자리가 보는데, 표를 정확히 적는 일이 아니라 다음 투자에서 누구의 몫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미리 계산하는 일입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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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