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유치
Fundraising
관행
지분을 내주거나 돈을 빌려 사업에 쓸 자금을 밖에서 마련하는 일로, 회사가 자란 정도에 따라 이름과 조건이 달라집니다.
등장 배경
회사를 만드는 일에는 돈이 매출보다 먼저 듭니다. 개발자 다섯 명이 1년 동안 첫 제품을 만들면 1년치 인건비가 나가는 동안 들어오는 돈은 없습니다. 자리를 잡은 회사라면 은행에서 빌리면 되지만, 만든 것이라고는 화면 몇 개뿐인 회사에는 은행이 담보로 잡을 것이 없습니다. 팔 물건도 없고 매출 기록도 없으니 갚을 능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 회사가 돈을 구하는 자리는 오랫동안 창업자의 통장과 가족과 지인뿐이었습니다. 그 범위에서 모을 수 있는 금액은 대개 몇천만 원이고, 그 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반년 남짓입니다. 반년 안에 매출이 나오는 사업만 시작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만드는 데 2년이 걸리는 제품은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이 벽을 넘으려고 굳어진 방식이 회사의 일부를 내주고 돈을 받는 거래입니다. 지금은 값이 얼마 안 되는 회사의 지분을 나중에 크게 오를 것이라는 판단으로 사 두는 것입니다. 빌린 돈이 아니니 갚을 의무가 없고, 대신 회사가 잘되면 그 커진 몫을 산 사람이 함께 가져갑니다. 열 곳에 넣어 아홉 곳이 사라져도 한 곳이 오십 배가 되면 전체로는 남는 계산이라, 매출 기록이 없는 회사에도 돈이 닿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한 번의 거래가 아니라 긴 절차라는 점입니다. 돈을 대는 쪽은 대개 남의 돈을 맡아 굴리는 처지라 회사를 꼼꼼히 뜯어보고, 그 검증에만 몇 주가 듭니다. 조건을 적은 문서가 몇 차례 오가고 변호사가 계약서를 고친 뒤에야 입금이 이뤄집니다. 첫 미팅부터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까지 서너 달이 걸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또 하나 정해야 할 것이 회사의 값입니다. 얼마를 받고 지분을 얼마나 내줄지는 이 값에서 계산되는데, 이익이 없는 회사에는 계산 근거가 없습니다. 여기에 답을 만드는 일이 기업가치 평가입니다.
이 시간표를 모르면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페이지덱의 규원이 처음 투자자를 만나러 나간 것은 시드 자금이 다섯 달 남았을 때였습니다. 첫 미팅에서 매출을 월별로 쪼개 보여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런 형태의 숫자가 회사에 없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알았습니다. 자료를 만드는 데 3주가 걸렸고 그사이 잔고는 넉 달치로 줄었습니다. 규원이 그때 얻은 교훈은 급한 쪽이 조건을 고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분야 구성
이 일을 이루는 요소는 네 갈래로 나뉩니다. 회사가 어느 시점에 얼마를 받는 자리인지(라운드), 그 돈을 대는 쪽이 누구인지(투자자), 처음 만나서 서명까지 어떤 단계를 밟는지(절차), 주고받는 약속을 어떤 형태의 계약으로 굳히는지(수단)입니다. 앞의 둘은 회사가 놓인 상황을 가리키고, 뒤의 둘은 실제로 손을 움직여 하는 일입니다.
라운드는 돈을 받는 자리마다 붙은 이름입니다. 회사가 자란 정도에 따라 나뉘고, 단계마다 증명해야 하는 것이 다릅니다. 여섯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 프리 시드 — 아이디어와 사람만 있는 단계에서 받는 첫 자금입니다. 제품이 없으니 볼 숫자도 없고, 판단은 창업자와 문제에 걸립니다. 금액은 몇천만 원에서 3억 원 사이가 흔하고, 쓰임새는 첫 버전을 만들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 시드 — 제품을 만들어 원하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주는 돈입니다. 쓰는 사람은 몇 안 되고 돈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시기라, 이 돈이 증명해야 하는 것은 매출이 아닙니다. 쓴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지입니다.
- 시리즈 A — 돌아온다는 증거가 나온 뒤에 그것을 키우라고 주는 돈입니다. 30억에서 100억 원 사이가 흔하고, 여기서부터 질문이 바뀝니다. 고객이 있느냐가 아니라 돈을 써서 고객을 데려오면 그 돈보다 많이 돌려받느냐를 묻습니다.
- 시리즈 B — 확장에 드는 돈입니다. 국내에서 되는 것이 해외에서도 되는지, 영업 인원을 세 배로 늘려도 성사율이 유지되는지처럼 규모를 시험하는 데 씁니다. 이후로는 C, D 로 알파벳이 이어집니다.
- 브리지 라운드 — 정규 라운드 사이에 끼워 넣는 중간 자금입니다. 시리즈 A를 받기에는 숫자가 조금 모자라는데 잔고는 석 달 남았을 때, 기존 투자자에게 소액을 더 받아 여섯 달을 벌고 그사이 숫자를 만듭니다.
- 다운 라운드 — 지난번보다 낮은 회사 값으로 받는 투자입니다. 목표를 못 채운 채 돈이 떨어지면 값을 낮춰서라도 받아야 하고, 이때 기존 주주의 몫이 크게 줄어듭니다.
투자자는 돈을 대는 쪽을 가르는 갈래입니다. 엔젤 투자자는 자기 돈으로 초기 회사에 넣는 개인입니다. 대개 먼저 창업해 회사를 판 경험이 있는 사람이고, 금액은 작지만 결정이 빠릅니다. 마음에 들면 한 주 안에 답이 옵니다. 벤처캐피탈은 남의 돈을 모아 대신 투자하는 기관입니다. 여기서 구조를 알아 두면 뒤가 이해됩니다. 연기금이나 대기업처럼 펀드에 돈을 대는 쪽을 출자자라 하고, 그 돈으로 어디에 투자할지 정하고 관리하는 회사를 운용사라 합니다. 운용사가 남의 돈을 맡아 쓰는 처지라서 심사가 깐깐하고 서류가 많은 것입니다. 액셀러레이터는 이 둘과 성격이 다릅니다. 소액을 넣는 대신 서너 달짜리 보육 과정에 팀을 넣고 사무실과 멘토링을 함께 줍니다. 투자와 교육을 묶어 파는 자리라고 보면 맞습니다.
절차는 첫 연락부터 입금까지의 순서입니다. 다섯 단계로 흘러갑니다.
- 명단을 만들고 소개를 구합니다. 무턱대고 보낸 메일보다 아는 사람을 거친 소개의 회신율이 훨씬 높아서, 이 단계에 드는 시간이 생각보다 깁니다.
- IR 자료를 만들어 첫 미팅을 합니다. IR 자료는 회사를 열다섯 장 안팎으로 설명하는 발표 자료로, 무슨 문제를 누구를 위해 어떻게 풀고 있으며 지금까지 어떤 숫자가 나왔는지를 담습니다.
- 두세 번의 후속 미팅에서 숫자를 검증받습니다. 지표를 어떤 기준으로 셌는지, 쓰던 고객이 다시 돌아오는지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들어옵니다.
- 텀시트를 받습니다. 투자 금액과 회사 값, 투자자가 받는 주식의 종류와 거기 붙는 권리를 한두 장으로 요약한 문서입니다. 법적 구속력은 대개 없지만 여기서 합의한 조건이 본계약에 거의 그대로 들어갑니다.
- 실사를 거쳐 본계약에 서명하고 입금을 받습니다. 실사는 투자자가 회사를 뜯어보는 절차로, 계약서와 주주 구성과 세무 자료를 확인합니다. 말한 것과 서류가 어긋나면 여기서 멈춥니다.
수단은 주고받는 약속을 어떤 문서로 굳히는지를 다루는 갈래입니다. 회사 값을 정해 주식을 바로 넘기는 것이 기본이지만, 초기에는 값을 매길 근거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SAFE 같은 계약이 자주 쓰입니다. 지금은 값을 정하지 않고 돈만 먼저 받되 다음 정규 투자에서 정해지는 값을 기준으로 지분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전환사채는 형태가 조금 다릅니다. 일단 빌려주는 돈으로 처리하고 나중에 지분으로 바꾸는 선택권을 주는 채권이라, 지분으로 바꾸지 않으면 갚아야 할 빚으로 남습니다.
네 갈래는 한 줄로 이어집니다. 회사가 어느 라운드에 서 있느냐가 만나야 할 투자자의 종류를 정하고, 투자자의 종류가 절차의 길이를 정하며, 라운드가 이른 단계일수록 수단은 값을 정하지 않는 쪽으로 기웁니다. 그래서 같은 3억 원이라도 프리 시드에서 엔젤 투자자에게 받으면 두 주 만에 한 장짜리 계약으로 끝나고, 시리즈 A에서 기관에게 받으면 넉 달과 수십 장의 서류가 듭니다.
실무 용례
"현금 일곱 달 치 남았으니까 이번 달부터 준비해서 두 달 뒤에 나가시죠."
이 일에 서너 달이 걸리니 잔고가 더 줄기 전에 착수하자는 말입니다.
"텀시트에 청산 우선권이 붙어 왔어요. 답 보내기 전에 변호사부터 붙이시죠."
회사가 팔릴 때 누가 먼저 돈을 가져가는지를 정하는 조항이라 앞에 적힌 금액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번엔 SAFE 로 받고 밸류는 다음 라운드에서 정하죠."
지금은 회사 값을 매길 근거가 부족하니 지분 계산을 뒤로 미루자는 제안입니다.
페이지덱은 구성원 마흔다섯 명으로 시리즈 A를 막 마쳤습니다. 넉 달에 걸친 이 라운드에서 규원은 스물세 곳을 만났고 텀시트는 두 곳에서 받았습니다. 그중 한 달은 지현이 제품 숫자를 다시 세는 데 쓰였습니다. 활성 사용자를 어떤 기준으로 세는지가 투자사마다 달라서 한 곳은 월 단위로, 다른 곳은 주 단위로 물었는데 앞서 건넨 답끼리 아귀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초기에 두 달 동안 함께 일한 외주 개발자와의 계약서에 결과물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 한 줄을 정리하는 데 2주가 걸렸고 입금은 그만큼 미뤄졌습니다. 규원이 그때 내린 결론은 지금도 자주 꺼내는 말이 됐습니다. 거래는 미팅에서 정해지고 서류에서 막힙니다.
흔한 오해
투자를 받는 일을 회사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로 읽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금액이 기사로 나가고 축하가 오가니 성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돈은 벌어들인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일부와 맞바꾼 것이고, 장부에도 매출이 아니라 자본으로 적힙니다. 50억을 받았다는 발표는 앞으로 50억어치의 가치를 만들어 내겠다는 약속에 가깝습니다. 이것을 성적표로 읽으면 다음 라운드까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가 흐려집니다. 열여덟 달 뒤에 눈에 보이는 것이 늘어난 인원과 늘어난 지출뿐인 회사가 이렇게 나옵니다.
회사 값이 높게 잡힐수록 무조건 좋은 조건이라고 읽는 것도 흔합니다. 같은 금액을 받을 때 값이 높으면 넘어가는 지분이 적으니 좋게만 보입니다. 실제로 회사 값 40억에 10억을 받으면 20퍼센트가 넘어가고, 90억에 10억을 받으면 10퍼센트만 넘어갑니다. 빠진 것은 이 숫자가 다음 라운드의 출발선이 된다는 점입니다. 90억으로 받아 둔 회사는 열여덟 달 안에 그보다 한참 높은 값을 받을 만큼 자라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값을 낮춰 받는 자리로 밀려납니다. 값을 낮춰 받으면 기존 주주의 몫이 깎이고 구성원에게 나눠 준 주식의 값도 함께 내려앉습니다. 숫자를 끝까지 올리는 것보다 그 숫자에 걸맞은 성장을 다음 라운드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먼저 따지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주 헷갈리는 용어
| 용어 | 누가 주식을 사는가 | 투자 유치와의 차이 |
|---|---|---|
| 기업 공개 | 증권시장에 있는 누구나 | 주식을 상장해 누구나 사고팔 수 있게 엽니다. 정해진 소수와 조건을 협상하는 대신 공시 의무와 외부 감사를 지게 되고, 대개 비공개로 여러 라운드를 거친 뒤에 오는 자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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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6